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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 일당 남침투는 북극좌 소행 김일성, 대북밀사 이후락에게 해명

김신조 일당 남침투는 북극좌 소행 김일성, 대북밀사 이후락에게 해명

Posted May. 06, 201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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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북한 주석은 1972년 5월 대북밀사로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1968년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기도된 121 사태는 북한 내 극좌세력(extreme leftist)이 주도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리처드 닉슨 미 행정부는 박정희 정권이 1972년 10월 선포한 비상계엄령 내용 가운데 미국의 아시아정책을 비난한 대목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삭제할 것을 요구해 관철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미 국무부는 4일(현지 시간) 1970년을 전후한 닉슨 행정부 시절 미국의 한반도 외교정책을 담은 489쪽 분량의 미국의 대외관계, 19691972년, 한국편 외교문서를 비밀 해제해 공개했다.

김일성 121 사태는 극좌세력 소행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121 사태에 대해 김일성은 극좌세력이 주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1972년 6월 12일 작성된 이 문서는 김일성의 이런 언급은 121 사태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자기 잇속만 차리는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실제 수년에 걸쳐 북한에서 파벌 갈등이 일어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문서는 김일성 주석을 영락없는 스탈린주의자로 평가하면서도 121 사태를 보면 김일성이 권력 내부의 분파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북한 권력 내 분파주의를 근거로 남한에서 생각한 것만큼 북한 지도부가 힘과 활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이 문서는 분석했다. 김일성은 또 이후락과의 면담에서 한반도 통일을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남한 정권에 설득시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문서에 따르면 이후락은 김일성과의 면담을 토대로 김일성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종전 인식과 달리 현실감이 있고 통찰력을 갖춘 것은 물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아첨꾼들의 약점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미, 1972년 계엄령에서 미국 비난 삭제 요구

1972년 10월 미국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개헌 발표와 함께 선포한 비상계엄령 내용 가운데 미국을 비판한 대목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윌리엄 로저스 미 국무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전인 10월 16일(미국 시간) 김동조 주미대사를 국무부로 초치해 미국은 한국이 계엄령을 선포하기로 결정한 이유, 특히 아시아에서의 미국 정책을 비난한 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본국에 알려주기 바란다고 통보했다. 로저스 장관은 이어 닉슨 대통령은 계엄령에 담길 이런 표현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며, 계엄령이 그대로 선포될 경우 미국과 한국 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는 공개적으로 계엄령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이 요청을 받아들여 미국에 부정적으로 표현된 부분을 삭제한 뒤 10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비상계엄령 영문본 사본을 발표 24시간 전에 김종필 당시 총리를 통해 필립 하비브 주한 미대사에게 전달했다.



최영해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