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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잃은 슬픔 딛고 몰래 돕는 수호천사로

Posted September. 18, 200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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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발생한 서울 용산 초등생 납치살해 사건 당시 외동딸을 잃은 부모가 자신들처럼 강력범죄로 피해를 본 가족들을 돕는 데 써 달라며 아름다운재단에 수천만 원을 기부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006년 2월 동네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에 들렀다가 인근 가게 주인에게 납치돼 살해당하고 시신까지 유기된 허미연 양(피살 당시 11세)의 아버지 허모 씨(42)와 어머니 이모 씨(41)가 아름다운재단을 찾은 것은 사건 이듬해인 2007년이었다. 허 씨 부부는 처음에는 자신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채 기부를 해야 하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고만 했다. 이들은 나중에서야 재단 관계자에게 용산 초등생 납치살해 사건 때 희생된 아이의 부모라며 자신들의 아픈 사연을 밝히고 우리처럼 강력범죄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부부는 2007년부터 10년 동안 매년 1000만 원을 미연이의 수호천사기금으로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2007년 3월 재단에서 기부 협약식을 가졌다. 올해까지 3000만 원을 기부하면 되지만 이들이 지금까지 재단에 기부한 돈은 약속한 금액보다 1000만 원이나 많은 4000만 원. 부부는 수시로 재단을 찾아 수표를 놓고 가는 등 기금을 하늘로 떠나보낸 딸을 키우는 심정으로 정성스럽게 키워왔다. 재단을 통해 부부의 사연을 전해들은 다른 개인 기부자들의 정성까지 더해져 기금은 현재 총 4680여만 원으로 불어났다.

이렇게 모은 기금은 재단이 한국범죄피해자지원중앙센터에서 추천받은 강력범죄 피해자 가족들을 돕는 데 사용되고 있다. 2007년과 2008년에 5가구씩 총 1900만 원이 지원됐고 올해도 8가구에 1600만 원이 지원됐다. 재단 관계자는 수호천사기금을 지원받은 가정 중에는 연쇄살인범 유영철, 정남규 사건으로 숨진 희생자 가족과 퍽치기 범죄로 가장을 잃은 가족 등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3년 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조용히 선행을 이어가고 있는 허 씨 부부는 다른 강력범죄 피해자 가족을 돕는 가운데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숨진 딸을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워했던 허 씨 부부가 최근에는 미연이의 사진을 꺼내서 보여주며 미연이가 좋아했던 음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등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부부는 재단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미연이가 엄마 아빠 구두를 닦아서 받은 용돈을 저금통에 모아 연말에 성금 낼 때 기부를 했었다며 외동딸과의 즐거웠던 한때를 회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부는 기금을 받은 강력범죄 희생자 가족들에게 소중한 딸아이를 잃었습니다. 슬픔이 분노가 되지 않기 위해 작은 실천을 해봅니다. 저희 도움이 잠시나마 격려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글귀를 적은 카드를 전하기도 했다.

재단 관계자는 매년 2, 3차례씩 허 씨 부부를 만나 기금 전달 상황을 설명한다며 미연이 부모님이 용기를 내 시작한 일이 강력범죄로 고통받고 있는 가족들에게 큰 도움과 격려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우정열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