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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에 눈물짓던 소년, 축구의 별 되다

Posted May. 27, 200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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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먹고 싶은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꼬마는 초콜릿 하나를 다 먹고도 양에 차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엄마는 안 된다고 얘기했다. 휴일도 없이 청소부 일을 하는 엄마의 한 달 수입은 74만 원. 이 돈으로 다섯 식구를 먹여 살렸다. 아이의 초콜릿 사랑을 애써 외면해야 하는 엄마는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 대신 꿈을 품었다. 꼭 돈을 많이 벌어서 초콜릿을 마음껏 사먹을 거야.

축구공이 유일한 친구였던 아이

1985년 포르투갈 마데이라 섬의 푼샬이라는 작은 항구 도시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아이의 집은 쪼들리게 가난했다. 아버지는 알코올의존증자였다. 형은 마약에 찌들어 정상적인 생활을 못했다. 집안 사정은 날로 어려워졌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걸 보며 아이는 다짐했다. 나는 절대로 술과 마약을 하지 않겠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던 아이의 주변엔 친구가 별로 없었다. 어려운 형편에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 유일한 친구는 축구공. 밥을 먹으면서도 축구공을 발밑에 뒀다. 세 살 때부터 공을 차기 시작한 그는 축구를 하면서 슬픔과 분노를 털어냈다.

아이는 여덟 살 때 마데이라 지역의 아마추어 유소년 팀 안도리냐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낸 뒤 나시오날로 팀을 옮겼고, 열한 살 나이에 포르투갈의 명문 스포르팅 리스본의 유소년 팀으로 이적했다. 처음 팀에 합류했을 때 동료 선수들은 그를 시큰둥하게 바라봤다. 촌뜨기라고 놀렸고, 시골 말투를 흉내 내며 비웃었다.

맨유의 기둥이 되다

비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청년이 된 아이는 열여섯 살에 리스본 성인팀 데뷔전을 치렀다. 열일곱 살엔 본격적으로 성인팀에 합류했다. 뛰어난 신체조건, 화려한 개인기, 어린 선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침착함을 갖춘 그는 포르투갈 청소년대표, 국가대표에 잇따라 뽑혔다. 어느새 세계 스카우트들이 그의 발끝을 주목했다.

그리고 2003년 8월 13일.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친선경기에 나섰다. 현란한 발재간으로 수비진을 농락했다. 맨유 수비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우리는 산소마스크가 필요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맨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꼭 일주일 뒤 10대 선수 중 프리미어리그 사상 최대의 이적료인 1225만 파운드(약 228억 원)를 주고 그를 영입했다.

초콜릿도 먹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던 아이는 이제 15만 파운드(약 3억 원)가 넘는 주급을 받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됐다. 가끔 지나칠 정도의 승부욕과 여성 스캔들로 손가락질도 받지만 축구에 대한 사랑만큼은 여전하다. 가족에 대한 사랑도 변함이 없다. 그의 형은 마약 치료를 끝내고 페인트공으로 산다. 어머니와 누나 등 가족 모두가 그의 도움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힘든 시절을 겪은 그이기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도 아낌이 없다. 그의 어머니는 항상 자랑한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아들이 남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이의 아버지는 할리우드 스타이자 40대 미국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서 아이 이름을 호날두(Ronaldo)라 지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