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동시에 엄습해 오는 두려움을 누를 길이 없다.
열린우리당의 218전당대회에서 승리한 정동영 신임 당의장이 19일 아침 대의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힌 소회다. 전날 전당대회가 끝난 뒤 서울 송파구 재향군인회관에서 있었던 정 의장 캠프의 뒤풀이 자리에서도 환호작약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 의장 측 참모들은 한결같이 이겼지만, 험난한 앞길을 생각하면 기뻐할 일이 뭐가 있느냐고 말하고 있다.
정 의장으로서는 1년 10개월 남은 차기 대선 때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는 길마다 지뢰밭이고, 험준한 협로다.
출발선인 이번 전당대회부터 흥행에 실패했다. 여권 내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정 의장과 김근태() 신임 최고위원이 맞붙은 대권 예비고사의 성격을 띠었지만 집안 잔치에 그치고 말았다. 빅 매치를 통해 당 지지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 빗나간 것.
두 사람의 지지도를 합쳐도 야당의 유력 대권주자 1명의 지지도에 못 미치는 냉엄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강한 여당을 내걸었지만 출발점부터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첫 번째 심판대가 될 531지방선거도 현재로서는 묘책이 없다. 정 의장은 이번 경선 과정에서 16개 시도지사 중 절반, 지방의회 의석의 절반을 건져야 한다고 목표치를 내놨으나 전망은 밝지 않다.
18일 당선 기자회견에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10년 지방정권을 심판하는데, 힘이 좀 부친다. 고건() 전 국무총리와 협력할 수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지방선거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움을 자인한 것이다.
고 전 총리는 즉각 정 의장에게 축전을 보냈지만 과연 연대가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설령 연대가 이뤄지더라도 정 의장으로서는 고 전 총리와 차기 대권후보 자리를 놓고 진검승부를 벌여야 한다.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알 수 없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정 의장은 19일 첫 일정으로 한나라당의 아성인 대구를 찾았다. 그것도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인사들의 묘소를 참배함으로써 상징적으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맞짱을 뜨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 승패의 관건이 될 영남 공략이나 호남 수성은 동시에 달성하기 힘겨운 과제다. 영남은 여전히 거리가 있고, 호남에서는 광주 전남을 중심으로 민주당에 위협당하고 있다.
2, 3위 득표로 최고위원에 당선된 김근태-김두관() 연합의 힘도 정 의장에게는 큰 부담이다. 당권 장악에 성공했지만 전대 결과를 보면 당을 완전히 평정하지는 못한 것.
전당대회에서 짝짓기를 했던 정 의장-김혁규() 최고위원의 득표 합계(7270표)는 김근태-김두관 최고위원의 득표 합계(7065표)와 별 차이가 없다.
당장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에 정동영 체제는 내부의 공격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전당대회에서 지도부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목소리가 커진 40대 재선그룹이나 중도파 중진들, 고 전 총리 쪽에 눈길을 두고 있는 일부 호남 출신 및 초선 의원들을 모두 아우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숙제다.
김정훈 민동용 jnghn@donga.com mindy@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