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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건 두렵지 않아, 방법이 문제지

Posted October. 29, 2005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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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345쪽•9500원•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핀란드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63)가 1990년 내놓은 장편이다. 자살에 나선 핀란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핀란드는 잘살기도 하지만 자살률도 세계 1, 2위를 오르내리는 나라다.

네 번째로 파산한 데다 마누라한테서도 냉랭한 대접을 받는 세탁소 사장 렐로넨은 휴양지 헛간에서 권총 자살을 하려다가 목을 매고 있던 육군 대령 켐파이넨을 만난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두 사람은 불현듯 움터 오는 동지 의식에 뜨거운 손을 맞잡는다. 이들은 죽음 앞에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해 큰판을 벌이자면서 신문 광고를 통해 자살자들을 모집한다.

어쩐지 가이아나에서 벌어졌던 인민사원 집단 자살을 떠올리게 되는데 파실린나는 이런 소재를 그로테스크 유머로 버무려 놓았다. 아내가 숨지고 자신마저 무보직이 된 켐파이넨 대령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분위기가 잡힌다.

최소한 전쟁이나 폭동이 일어날 가망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세계정세는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는 기존의 사회 체제에 반란을 시도하려는 기개가 부족하다. 핀란드 젊은이들의 사회 참여 활동은 대합실 벽을 음담패설로 더럽히는 게 고작이었다.

이들은 자살 동지회들을 이끌고 장도()에 오르는데 켐파이넨과 렐로넨은 스스로를 모세와 아론에 비유하기도 한다. 성서의 모세와 아론은 이집트에 끌려간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기 위해 홍해까지 가른 지도자들이다. 그들 역시 버스를 북해에 처박아 잠시라도 바다를 갈라 보겠다는 점이 좀 비슷하고, 나머지는 완전히 착각이다.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 여럿 나오는데 애잔하고 비애에 차 있다기보다는 조금 우울할 뿐 어떨 땐 깔끔해 보이기까지 한다. 서정적이기보다는 군살을 싹 빼 버린 단문들이 그런 느낌을 더한다. 그래서 이들의 여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수학여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소설 속의 한 젊은이는 황혼의 핀란드 만 상공에 열기구를 띄우고 이별가를 부른 뒤 뛰어내리자는 웅장한 자살 방식을 꺼내 놓는다. 채택되진 않았지만 버스 여행 쪽보다는 더 극적일 것 같다.

파실린나는 약 40권의 소설을 펴냈으며 약 30개국에서 번역됐다. 유럽 올해의 작가상을 받는 등 핀란드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권기태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