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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열화 신드롬

Posted December. 26, 200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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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학 입시철이다. 매년 입시 때마다 눈치작전이 기승을 부렸지만, 특히 올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원점수를 제공하지 않고 표준점수만 제공하기 때문에 로또 입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그동안 교육당국은 학교의 서열화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여러 조치를 취해 왔다. 수능에서 총점 기준 개인별 석차를 없앤 것은 오래전이고, 2008학년도부터는 완전등급제로 갈 예정이다. 또 한편으로는 전국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업성취도 조사 결과를 학교 간, 지역 간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교육당국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서열화 풍조가 개선됐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최근에는 이런저런 외국기관에서 매긴 대학 순위들이 언론에 대서특필되곤 한다. 근거도 불분명하고 기준도 의심스러운 이런 평가 결과를 가지고 한국 대학은 모두 세계 100위 밖이라든가 아시아에서 최하위권이라는 등의 결론을 내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학뿐만 아니라 노사관계의 안정성처럼 주관적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부문에서도 외국기관이 매긴 순위의 등락에 따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일이 많다.

숫자는 간단명료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짧은 시간에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그 메시지가 너무 단순화돼 사안을 깊이 살피지 못하는 단점도 크다. 아마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양성이 중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획일화를 부추기는 점일 것이다. 대학도 연구능력이 우수한 대학, 학생 교육에 철저한 대학 등으로 특성화돼야 하는데, 부문별로 점수를 매겨 총계로 순위를 정하면 모든 대학을 한 기준으로 획일화하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외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신경을 쓰는 이유는 사실 본인들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가 외국인이 매기는 대학 순위에 신경을 쓸까? 아마도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서열화 신드롬을 없애는 근본 대책은, 서열화 철폐운동을 벌이거나 정보의 공개를 막는 것보다는 외부의 평가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실력과 자신감을 기르는 일일 것이다.

오 세 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물리학

sjoh@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