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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세력 사살 민간인 학살

Posted December. 02, 20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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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저항세력이 대규모로, 이렇게 조직적으로 대항한 것은 처음 봤다.(미군 지휘관)

소수의 사담 후세인 추종세력의 기습에 미군이 과잉 대응해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미군이 임명한 사마라 경찰서장)

저항세력 50명 이상을 사살했다.(미군 당국)

그 많은 시신은 다 어디 갔는가.(기자들)

미군이 1일 이라크전 종전 뒤 최대 전과를 올렸다고 발표한 사마라 전투의 진실은 무엇인가. 저항세력의 매복 기습, 미군의 응징작전 과정에 대한 설명이 크게 엇갈리는 데다 미군의 전과()도 의심받고 있다.

사살했으나 시신이 없다=전투는 지난달 30일 오후 1시30분 디나르 신권 화폐를 실은 미군 수송대가 사마라 내 은행 두 곳에 접근하자 저항세력이 기습공격을 가하면서 시작됐다. 저항세력은 과거의 치고 빠지는 전법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집중사격을 가했다. 산발적인 전투는 3시간이나 계속됐다.

미군은 전투가 끝난 뒤 후세인 정권 시절의 페다인 민병대 차림을 한 저항세력이 기습을 해와 46명을 사살하고 11명을 붙잡았다고 발표했다. 몇 시간 뒤 사살 54명, 포로 1명으로 정정했다.

그러나 외신들이 사마라 병원과 이라크 경찰의 보고를 토대로 집계한 시신은 불과 8구. 민병대 복장의 시신도 없었다.

미군 지휘관들은 저항세력이 동료들의 시신을 가져갔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AFP통신은 미군 발표대로 60여명의 저항세력이 기습했다면 대부분 전사했을 텐데 어떻게 시신을 끌고 갈 수 있었나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바그다드에서 전황을 설명한 대변인 마크 키미트 준장은 민병대 복장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첫 전황설명이 부분적으로 틀렸을 수 있다고 말해 더욱 궁금증을 자아냈다.

조직적인 전투인가, 산발적인 저항인가=현장지휘관 중 한 명인 앤디 디포나이 대위는 저항세력이 30, 40명씩 무리지어 이슬람사원, 골목길, 지붕 위에서 총격을 가해 왔다며 전투 훈련을 받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장보고를 토대로 키미트 준장은 저항세력이 중앙 지휘체제를 구축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스마일 모하메드 경찰서장은 파이낸셜 타임스와 AFP통신 기자에게 저항세력 1, 2명의 기습을 받은 미군이 이들이 물러갔는데도 민간인들에게까지 무차별 사격을 개시하면서 사건이 커졌다고 말했다.

외신은 미군들의 총격으로 유서 깊은 알 아스카리야 수니파 사원을 찾은 이란 순례자 한 명이 숨졌고, 사원에서 예배를 올리던 신도들이 죽거나 다쳤다고 전했다.

또 민가 화단에 폭탄이 떨어져 아들을 잃었고, 통근버스에 탔다가 미군 로켓포공격을 받았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전했다.저항세력의 거점인 수니 삼각지대에 있는 사마라는 올 6월 미군의 결혼식 하객 총격사건 등으로 반미감정이 극에 달한 지역. 최근 3주 동안 신권 운반차량에 대한 저항세력의 공격이 빈번해 지난달 30일엔 미군도 전차 8대, 장갑차 4대를 동원해 대대적 반격작전을 준비했다. 미군 당국은 무고한 시민이 죽거나 다쳤다는 보고를 받은 적 없다고 외신 보도를 강력히 부인했지만 현지 주민들은 보복을 다짐하고 나섰다



박래정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