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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채 GDP 40% 육박 감기 잘걸리는 한국, 속옷 차림 다니는 격

외채 GDP 40% 육박 감기 잘걸리는 한국, 속옷 차림 다니는 격

Posted August. 09, 20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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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외화유동성 위기가 우리 경제의 숨통을 쥐고 흔들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외환위기는 국내 대기업의 부실과 텅 빈 달러 곳간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인해 각각 촉발됐지만 한국 경제에는 지나친 단기외채 문제로 불거져 환율 폭등, 실물경제 침체 등 후유증을 톡톡히 겪어야 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정부는 이번만은 다르다고 자신만만해한다.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고수준에 도달했고 단기외채 비중도 크게 감소하는 등 우리나라의 외채 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마냥 안심해서는 안 될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겉으로 드러난 지표가 나아진 건 분명하지만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인 우리나라로서는 외환보유액 3100억 달러가 마냥 든든하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정부 스스로 총외채 마지노선을 4000억 달러로 설정한 상황에서 한계점이 불과 181억 달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정부 과거와는 다르다

정부가 외화유동성 상황을 자신만만해하는 근거는 다름 아닌 개선된 지표다. 외환보유액, 외채구조, 경상수지, 국가신용등급 등 모든 지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좋아졌다는 것이다. 총외채 규모는 현재 3819억 달러로 위기 당시 3651억 달러에 비해 약간 늘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기획재정부 최종구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총외채가 늘어나는 것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며 단기외채가 많이 줄어드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경제 여건을 비교해도 지금이 훨씬 안정적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경제가 지속성장한 점도 반영됐다. 2008년 18월 경상수지는 31억 달러 적자였지만 2009, 2010년에는 각각 328억 달러, 282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국가채무비율은 3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02.4%에 비해 상당히 양호하다.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도 무디스가 지난해 4월 한 단계 올렸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피치는 등급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 중이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은 팔자지만 채권은 사자인 점도 정부 자신감의 근거다. 외국인이 유가증권시장에서 8월 들어 8일까지 1조8283억 원어치 주식을 내다 팔 동안 국채선물시장에서는 3만1903계약을 순매수했다. 최 차관보는 외국인들은 채권시장에서 지난주까지 순매수했다라며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채권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세계시장에서 공통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마냥 안심할 수준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하다. 1998년에도, 2008년에도 정부는 항상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고 했지만 유동성 위기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터졌다. 세계 금융시장의 북극성이라는 미국 국채가 흔들리고 달러 체제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마당에 외환보유액이 넉넉하다고 상황을 낙관하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외환보유액 3100억 달러가 과연 충분한지에 대한 논란도 새삼 불거지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공식적으로는 목표치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3000억 달러+를 적정 수준으로 삼고 있는 분위기다. 재정부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 외환보유액 과다 보유 논란이 제기됐는데 이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로서 치러야 할 비용이고 과거 구제금융을 받은 전략까지 감안하면 더욱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스스로의 평가다.

단기외채 비중이 38%에 불과해 안정적이라고 하지만 금융당국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기관 외화유동성 특별점검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시중은행에 비상시 외화자금 조달 계획을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재정부가 7월 29일 6개 국내 주요 은행 및 3개 외국계 은행 고위관계자들을 불러 단기외채 증가에 대한 정부 우려를 전달하고 김치본드(외화표시채권) 발행 자제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국민은행이 연말 외화채권 3억 달러 만기 도래에 대비해 이미 7월에 장기로 자금을 조달했고 신한은행은 4월 5억 달러 글로벌본드 발행을 마쳤다.

박해식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보다는 외채구조가 많이 나아진 수준이지만 미국발 문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며 민간 쪽에서 단기외채가 늘어나는 걸 정부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스스로 언급한 총외채 4000억 달러 초과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어떻게 극복할지도 관건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대외 개방 측면에서 중국은 건장한 청년이 따뜻한 외투를 입고 있다면 우리는 감기에 잘 걸리는 아이가 속옷만 입은 채 나돌아 다니는 격이라는 흥미로운 비유를 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요구로 적극적인 금융 대외개방을 폈는데 이것이 부메랑이 돼 글로벌 위기 때마다 우리가 호되게 당한다는 것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은행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절대 믿지 말라. 내가 세 번이나 속았다고 경고한 것과 방향은 다르지만 맥락은 일치한다.

이미 열어놓은 빗장을 닫기 힘들다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엄격하고 완고한 기준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김 위원장이 속았다고 말한 건 그만큼 감독당국이 제대로 파악을 못했다는 고백이라며 자산과 부채 간 불일치나 외화 흐름 등을 다시 점검하고 보수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외환보유액은 그런대로 쌓아놨지만 그렇다고 낙관론에 빠져서 안심하고만 있으라는 건 정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부채구조를 세심하게 재차 점검하고 필요할 경우 은행권 외화 부채에 대한 안전조치 강화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훈 황형준 january@donga.com constant25@dong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