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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505명 국군포로 500여명 생존추정(일)

Posted January. 30, 201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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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와 납북자에 대해 북한은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북한은 국군포로 문제는 1953년 정전협정에 따른 포로교환으로 종료됐고 의거 입북자는 있을지언정 납북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정부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남북 협상 과정에서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시기에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불렸다. 특수 이산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국군포로 12명, 납북자 16명이 가족과 만났을 뿐이다.

정부가 파악한 625전쟁 이후 납북자는 505명이다. 선원이 439명으로 가장 많고 1969년 납북된 대한항공기 승객 11명, 군과 경찰 출신 납북자 27명, 기타 납북자(해외 납북자와 학생)가 18명이다. 1955년 김순귀 씨 등 대성호 선원 10명이 서해에서 처음 납북됐고 가장 최근에는 2000년 중국 지린() 성 옌지() 시에서 김동식 목사가 납북됐다. 이 중 지금까지 귀환한 납북자는 8명뿐이다.

납북자들은 오랫동안 감금과 폭행을 당하고 강제노역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이유를 들어 귀환 납북자 4명은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와 국가인권위원회에 북한 노동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바 있다.

정부는 또 510여 명의 국군포로가 북한에 생존해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귀환한 국군포로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추정치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 유엔군사령부는 국군 8만2000여 명이 포로로 북한에 억류됐다고 추정했으나 8343명만 송환됐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2008년 펴낸 국군포로 문제의 종합적 이해 보고서에 따르면 국군포로 대부분은 북한의 탄광, 광산, 철도 노동자로 강제 동원됐으며 사회생활과 자녀의 학업 등에서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국군포로는 1994년 고 조창호 소위(한국 입국 뒤 중위로 예편)가 북한을 탈출한 이후 지금까지 79명이 귀환했다.

정부는 북한 지역에 묻혀 있는 국군 유해가 3만9000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비무장지대(DMZ)를 포함해 남북한 전역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13만여 구의 약 30%에 달한다. 남한 지역의 전사자 중에선 지금까지 3360여 명의 유해가 발굴됐으나 북한 지역에서는 단 한 명의 국군 유해도 발굴되지 못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탈환 이후 북진이 시작된 1950년 10월부터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한 1951년 1월 14후퇴 때 전사한 국군들이 대부분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