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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보다 더 뛰어난 소설을 쓴 적이 없다

나는 이보다 더 뛰어난 소설을 쓴 적이 없다

Posted December. 16, 200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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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일이 없었다. 17세기 영국, 정치적 사회적 무질서가 기승을 부릴 때였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는 이 시기의 영국을 웃는 남자라는 아이로니컬한 제목의 장편소설에 담았다.

이 소설의 바탕에는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에 저항하다가 피신해 영국에서 20여 년간 망명생활을 했던 작가의 체험이 있었다. 작가가 이 책보다 더 뛰어난 소설을 쓴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애착을 보였던 작품이며 2005년 프랑스 정부가 필독서로 지정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처음 번역됐다.

캐릭터의 이름부터 냉소적이다. 우르수스와 호모. 각각 곰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르수스는 곰의 가죽을 입은 사내의 이름이고, 호모는 우르수스가 데리고 다니는 늑대의 이름이다. 떠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먹고사는(그러나 실제로는 지적인 사색가인) 우르수스가 만난 웃는 남자의 삶이 소설의 내용이다.

어린이 매매단에 납치돼 웃고 있지 않을 때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로 강제로 수술을 받은 소년 그윈플레인. 매매단에서 풀려났지만 어려서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는 소년은 아사지경에 이른다. 소년은 우연히 만난 우르수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방랑길에 동행하면서 우르수스의 이야기 공연을 돕는다.

성장하는 그윈플레인의 눈에 비친 17세기 영국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청교도 혁명 이후 정권을 장악한 크롬웰이 죽은 뒤, 다시 왕정 체제로 돌아갔지만 왕들은 독재와 실정을 거듭했다. 정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빈부의 간극은 갈수록 커졌다. 그윈플레인의 이야기 솜씨를 눈여겨본 여공작이 그를 상류 사교계로 이끌면서 귀족들의 치부도 하나하나 드러난다.

선 굵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위고의 특징은 그대로다. 그러나 레미제라블이나 파리의 노트르담처럼 강렬한 서사가 아니라 침착하게, 그러면서도 예리하게 사회 문제를 지적한다. 어느 노파의 이마에서는 굶주림이 보였고, 어느 소녀의 이마에서는 매춘이 보였다. 소녀에게 돈을 제공하는 매춘은 더욱 음산했다. 군중 속에는 무수한 팔만 있을 뿐 연장은 없었다. 여기에는 실업, 저기에는 착취, 그리고 또 다른 곳에는 예속, 그윈플레인은 그러한 것들을 읽고 있었다.

추악한 사회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100여 년 전 위고의 고민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사색적이어서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지만, 시간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

위고의 다른 작품처럼 웃는 남자도 다른 장르로 옮겨졌다. 영화 연극에 이어 올해 뮤지컬로 무대에 올랐다.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웃는 얼굴이라는 설정도 영화 배트맨의 악당 조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스마일맨 등에 원용됐다. 원제 LHomme qui rit(1869년).



김지영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