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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대대적 탈바꿈

Posted April. 28, 2006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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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애국혼을 기리는 충남 아산시의 현충사()가 문화교육 공간 겸 종합 충무공센터로 탈바꿈한다.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성역화 사업을 벌인 지 38년 만이다.

현충사관리사무소가 최근 확정한 계획안에 따르면 160평인 현충사를 400평으로 넓히고 이름을 충무공기념관으로 바꿔 2011년 개관한다.

충무공과 관련한 유물을 총망라하는 종합전시관으로 만들 계획. 이를 위해 올해부터 2012년까지 157억 원을 들인다.

관리사무소는 경내에 있는 유물전시관을 경내 밖으로 옮기기로 했다. 관람객이 충무공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전시관에서 읽어보고 기념관에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충무공 고택 주변에는 옛 마을을 조성하고 고택의 내부도 고증을 거쳐 복원하기로 했다. 또 이순신 장군이 사용했던 충무정(우물)을 복원하고 활터에 체험시설을 마련할 계획이다.

유물전시관과 가까운 구 본전() 근처에는 본전 건립을 이끌었던 동아일보 기사와 공사 관련 기록을 한눈에 보여 주는 야외 전시관을 짓는다.

구 본전은 일제강점기 건립돼 일제에 항거한 한민족의 응집력을 보여 주는 건물.

동아일보는 1931년 5월 13일 아산군 음봉면 사정리의 충무공 묘 위토(묘에서 지내는 제사 비용 마련을 위해 경작하는 논밭)가 당시 덕수 이씨 13대 종손의 부채 때문에 경매 위기에 처했다고 처음 보도했다.

다음 날 민족적 수치-채무에 시달린 충무공 묘소라는 사설을 통해 충무공 유적 보존을 촉구했다.

또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춘원 이광수( )의 장편소설 이순신을 연재했다(1931년 6월1932년 4월178회).

본보 보도와 연재소설의 영향으로 2만여 명(400여 개 단체 포함)이 성금 1만6000원을 보냈다.

충무공 유적보존회는 1931년 5월 23일 발족해 채무를 갚은 뒤 위토를 2배로 넓혔다. 그해 7월 이후 현충사 사당(구 본전)을 중건했고 묘소와 비각을 정비했다.

1932년 6월 3일자 동아일보 사설은 뜨거웠던 국민 성원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민족적 지정()의 발견에 있어서는 상하를 묻지 아니하며 해내외()와 경향의 구별이 없었으며, 빈부의 이()가 없었다. 혹은 끼니를 굶어 (성금을) 보내기도 하며, 혹은 의복을 팔고, 혹은 품을 팔아 보내는 이도 있으며.

동아일보 만평가인 청전 이상범( )이 충무공 영정을 그려 1932년 6월 5일 봉안할 때는 3만여 명이나 모였다.

김사원() 현충사 관리사무소장은 1968년 성역화 사업 이후 현충사 시설이 낡고 유물을 확보하지 못해 다른 지역에 있는 40여 개의 충무공 기념관과 큰 차이가 없다며 종합정비 계획을 충실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명훈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