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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졸업해요 캠퍼스 조손커플

Posted February. 16, 200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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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강의를 들었으니 졸업장을 같이 받아야죠.

치매에 걸린 팔순 할머니가 손자가 다닌 대학에서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주인공은 17일 대전보건대 노인보건복지과를 졸업하는 정영철(29대전 서구 삼천동) 씨와 그의 할머니 김분순(85) 씨.

정 씨는 지난 2년 동안 할머니와 24시간 같이 지냈다. 그림자라고 해도 괜찮을 만큼 함께 돌아다녔다. 사연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씨는 그 해 교통사고를 당한 뒤 뇌병변장애(치매)를 얻었다. 2003년부터 증세가 심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퇴행성관절염이 겹쳐 몸을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가족회의가 열렸다. 생업에 매달려야 하는 정 씨 부모는 가족의 간병이 어려우니 요양시설로 모시자고 제안했지만 정 씨는 고개를 저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영철이, 우리 영철이 하며 끔찍이도 아껴주던 할머니였어요. 팔다리 건장하니 모실 수 있는 데까지 모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 씨는 당시 대전 혜천대 임상병리과(3년 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할머니를 돌보겠다고 마음먹고 취업 대신 대전보건대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그리고 차량을 구해 할머니를 태워 학교에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강의실에서는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들었다. 식당에서도 함께 밥을 먹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같은 과 학생들이 조손() 커플이라 불렀다. 집에서는 동생 영석(27대전 우송대 건축공학과 4년) 씨가 거들었다.

교수들은 출석을 부를 때 정영철이라고 부른 다음 할머니도 오셨죠?라고 확인했다. 시험을 볼 때 어느 교수는 할머니도 시험을 치르셔야 합니다라고 농담을 건넸다.

정 씨는 늘 할머니에게 신경을 써야 했다. 강의를 들으면서도 할머니 상태가 괜찮은지 눈길을 돌렸다. 동화책을 읽을 때는 말을 걸었다.

할머니, 얘가 콩쥐고, 쟤가 팥쥐예요. 쟤가 훨씬 심술궂게 생겼네요.

동료 학우들이 할머니에게 우유나 김밥을 사다주며 말벗을 해 주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강의뿐 아니라 실습도 할머니와 같이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실습시간에 학교 내 목욕탕에서 목욕을 시키고 안마를 해드렸다.

휴일에는 동물원을 찾아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영화를 볼 때도 할머니가 늘 함께 있었다. 할머니는 정 씨와 함께 지내면서 병세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치매 증세가 심할 때는 정 씨를 제외하고는 가족을 몰라봤지만 지금은 가족은 물론 정 씨의 학교 친구 1, 2명의 이름을 기억한다.

휠체어에 전적으로 의존했지만 규칙적인 운동 덕분에 혼자 일어설 수 있게 됐다. 옆에서 부축하면 조금 걷기도 한다.

김 씨는 요즘 우리 영철이 때문에 살았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정 씨는 주변에서는 힘들지 않으냐고 자주 묻지만 생활의 일부가 돼서 그렇지 않다며 사회복지시설에 취업해 할머니를 편안히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 측은 졸업식에서 할머니에게 명예졸업장을, 정 씨에게 졸업장과 효행상을 줄 계획이다.



지명훈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