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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왜, 왜, 왜?

Posted October. 01, 2004 22:31,   

日本語

전쟁의 발견-한국 고대사의 재구성을 위하여

이희진 지음

336쪽 1만2000원 동아시아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의 아들로 고대전쟁사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이희진41)는 전쟁이라는 게임의 논리로 한국 고대 삼국시대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는 삼국시대 역사에 종전의 정치사 중심의 역사 해석과 사뭇 다른 흥미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병사들끼리 온갖 무술을 다 동원해서 치고받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이런 장면은 양쪽 대열이 다 무너진 상태에서 혼전이 벌어지는 경우에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 고대의 전쟁에서는 보병끼리 맞부딪치는 전투에 운명을 거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고대 전투에서는 병사들의 무술 실력보다는 겁에 질리지 않도록 밀집대형을 유지한 채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제식훈련이 더 중요했다고 밝힌다. 또 공격하라고 외치는 최고지휘관의 목소리가 아니라 북과 나팔 소리로 병사를 통제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손자병법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같은 병법의 고전에만 머물지 않는다. 베트남전과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 같은 현대전이 등장하고 스타크래프트 게임은 아예 바이블처럼 인용된다. 예를 들어 산악지대로 이뤄진 한반도에서는 지형지물이 전쟁의 중요한 변수임을 설명하면서 좁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질럿의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몇 부대의 저글링을 돌격시키면 처참할 결과가 난다는 식이다.

또 산악지대라는 지형조건은 기동력은 강하지만 단거리 공격형 유닛인 기병()보다 기동력은 느려도 장거리 공격형 유닛인 궁수()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주몽이나 이성계 같은 국가의 시조들이 활을 잘 쏘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진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반도의 전쟁사를 보면 유독 활을 잘 쏘는 장수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양궁 같은 활쏘기대회에 관한 한 한국인이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대회를 휩쓰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신라가 일본(왜)으로부터 수백년 동안 공격을 받으면서도 일본 본토 반격에 나서지 않은 이유,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도와 왜군을 격퇴하면서 5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한 일 등에 대해 군사적 해석을 내놓는다.

신라가 일본 본토에 반격을 가하지 않은 것은 당시 일본은 고대국가가 성립되기 전이라 정복할 만한 국가적 실체가 없었고, 정복한다 하더라도 고구려와 백제의 견제 때문에 이를 유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광개토대왕이 5만 대군을 동원한 것도 왜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백제-가야-왜 연맹을 일거에 무너뜨리기 위한 대전략이었다. 신라에 대해 해상을 통해 치고 빠지는 전술밖에 펼치지 못하던 왜는 백제 근초고왕의 주도하에 가야연맹과 왜를 묶는 임나동맹에 가입하면서 가야라는 육상 거점을 발판으로 신라를 공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당황한 신라는 고구려에 도움을 청했고, 광개토대왕은 이 기회를 이용해 북부 전선에서 대병력을 빼내 속전속결로 왜군을 물리치고 일거에 임나연맹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재구성한 역사는 결코 컴퓨터 모니터에 명멸하는 한판의 게임은 아니다. 그것은 냉엄하고 복잡한 현실의 네거티브필름이며 동시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임을 재확인해 주는 다큐멘터리다.

백제중흥을 이끌던 성왕이 신라의 기습 매복으로 전사한 관산성 전투는 이후 백제와 신라의 명운을 가른 전투로 기억된다. 그러나 관산성 전투 이후에도 백제는 신라에 대해 100년간 군사적 우위를 유지했다. 또 나당동맹에 맞선 백제는 자중지란을 벌이다가 계백의 결사대가 신라군에 패하면서 멸망한 것으로 설명돼 왔다. 그러나 계백의 결사대는 보급로 차단을 위한 별동대였고, 백제 주력군은 백마강 유역에서 당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결사적 전투를 벌였음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권재현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