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사설] DJ, '불면의 밤' 벗어나려면

Posted February. 12, 2003 22:54,   

日本語

퇴임 10여일을 앞둔 김대중 대통령이 밤잠을 설쳐 국무회의에 불참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대북사업과 경제회생만은 양보할 수 없는 업적으로 간직하고 싶어했던 김 대통령이었는데, 대북 뒷거래 의혹과 국가신용등급 전망 하락으로 두 가지 모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판이니 왜 회한이 없었을까.

그러나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집권 5년을 실패와 파탄으로만 규정하는 야당에 대한 야속함, 사정을 뻔히 짐작하면서도 야당 못지않게 대북 비밀송금의 진상을 밝히라고 몰아붙이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측에 대한 당혹감도 김 대통령을 뒤척이게 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통치행위론이니 초법행위론이니 국익론이니 하는 자신의 논리가 하나도 먹히지 않는 데 따른 무력감, 사법심사 배제와 전모 공개 불가를 호소해도 여론만 악화되는 데 따른 초조감이 김 대통령의 잠자리를 더욱 괴롭혔을 것이다.

김 대통령이 이 같은 번민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선 대북정책의 무오류에 대한 아집을 버려야 한다. 통일의 기반을 닦은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고자 하는 강박감을 떨치고,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에 만족하는 겸허한 자세로 철저한 자가진단에 나서야 한다. 잘한 것을 내세우기보다 잘못한 것을 가려내 후임자가 경계토록 하는 게 물러가는 지도자의 도리다.

더욱이 지금이 어느 때인가. 대북관계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한미관계가 갈수록 꼬일 수밖에 없고 경제의 주름도 깊어질 수밖에 없는 국가적 위기상황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김 대통령에게 거듭 당부한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비밀송금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위기의 고리를 풀어야 한다.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면 된다.

진상규명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김 대통령이 계속 침묵하는 것은 본인에게나 국민에게나 불행하다. 지금이라도 진실을 털어놓으면 김 대통령도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있을 것이고, 국민도 보다 홀가분한 심정으로 새 정부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