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구 1700여 채 규모의 대단지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최근 25억 원에 팔렸다. 일반적인 거래와 달리 기존 집주인이 전세 세입자로 들어가는 조건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이 거래를 중개한 공인중개사 A 씨는 “입주 때부터 살던 기존 집주인이 집값이 최근 크게 오르자 차익을 실현하려고 매도하면서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당분간 계속 거주하길 원해 이런 방식으로 거래했다”고 설명했다.
●집값 급등에 재등장한 ‘주인 전세’
최근 서울 한강변을 중심으로 집주인이 세입자로 들어가 사는 조건으로 집을 파는 ‘주인 전세’(주전세) 거래가 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대출과 세금 규제가 여전한 가운데 이달 들어 서울 주요 지역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문재인 정부 시절 급등기에 나타났던 이례적인 거래 방식이 재등장한 것이다.
주인 전세 거래가 늘어나는 건 최근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매수자와 매도자에게 모두 이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매도자는 당장 다른 곳으로 이사하지 않고서도 집을 팔아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다. 매수자는 매매가에서 전세가를 뺀 차액만 지불하기 때문에 매수 부담이 줄어든다. 주인 전세 거래는 통상 일반적인 ‘갭투자’보다 전세 보증금이 높기 때문에 매수자는 더 적은 현금으로 매수할 수 있다. 새로 세입자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덜 수 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e편한세상금호파크힐스 전용 84㎡도 집주인이 전세로 들어가는 식으로 매수인을 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집주인은 매도 후 강남권으로 갈아타기를 원했지만 강남권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지자 매도하고 집값이 안정되길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성동구 옥수동 옥수삼성아파트 전용 84㎡는 20억 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공인중개사 B 씨는 “집주인이 전세 시세인 약 7억5000만∼8억 원에 세입자로 들어가서 살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해당 물건에 관심을 보이자 B 씨는 “전세 보증금을 8억5000만 원까지 올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집값-전셋값 부추길 우려”
주인 전세라는 생소한 거래 방식은 주로 마포와 성동구 등 한강벨트 일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올 3월 강남 3구와 용산구가 토허제로 묶이면서 생겨난 풍선효과로 풀이된다. 토허제 지역에서는 갭투자가 원천 금지되기 때문에 투자가 가능한 지역으로 수요가 몰렸다는 뜻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주인 전세 거래는 고강도 대출 규제가 시행됐던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강남권이나 경기 성남시 분당·판교 지역에서 주로 이뤄졌던 바 있다. 지금도 토허제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지역 중 고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마포와 성동구 등에 이런 거래가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주인 전세 거래는 집값 상승기에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갭투자 매수인으로서는 당장 자금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더 높은 매매가격에도 거래할 수 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 연구원은 “주인 전세 거래의 경우 매매가격 인상분이 전세가격 인상분보다 적어 매수인으로서는 투자금액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며 “다만 집값 상승기에는 실거래가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셋값 상승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인 전세 거래가 많아질수록 전세 매물이 줄어들면서 전셋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오승준기자 ohmygod@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