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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마음 내려놓고

Posted December. 30, 200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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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오산 사성암: 가파른 돌계단 끝 바위 위에 아슬아슬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오산(513m) 정상에 위치한 사성암. 그곳에 올라서면 산자락을 휘감으며 구불구불 흐르는 섬진강 줄기와 구례읍의 넓은 벌판, 멀리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지리산 연봉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 조사가 건립했다는 이 암자의 원래 이름은 오산암. 이후 의상 대사를 비롯해 원효 대사, 도선 국사, 진각 선사 등 4성인이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 불리게 됐다.

구례읍 오산 입구에서 1시간 30분쯤 걸어 올라갔을까. 산꼭대기에 바위를 병풍 삼아 아담한 암자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암자가 바위틈으로 파고 들어간 이색적인 모습이다. 6채가 올망졸망 들어서 있지만 어느 것 하나도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수줍은 시골처녀 같다.

사성암은 여느 절과 달리 넓은 마당이 없다. 대신 가파른 돌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다. 좁은 돌계단 양옆에는 허리높이로 돌담이 쌓여 있다. 그 돌담 위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이름을 적어놓은 기와가 가지런히 포개져 있다.

병풍처럼 둘러진 암벽에는 마애여래입상이 조각돼 있는데 밖에서는 약사전에 가려 오른쪽만 살짝 보이지만 약사전 안에 들어가면 자비로운 미소로 맞이해 주는 마애여래입상 전체를 볼 수 있다.

대웅전 옆쪽엔 뗏목을 팔러 하동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움에 끝내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전설이 깃든 뜀바위가 있다. 해질 무렵 뜀바위에 오르면 섬진강 건너 산자락 뒤로 그림같은 노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미리 연락하면 산사체험도 가능하다. 하룻밤 머무는 데 1인당 1만 원. 사성암 061-781-5463

해남 두륜산 일지암: 중흥시킨 초의선사 향기 은은

일지암에 가려면 우선 두륜산의 대흥사를 거쳐야 한다.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자리 잡은 대흥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창건된 이래 수많은 학자와 시화묵객()이 교류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보전, 천불전, 용화당, 봉향각, 무량수각 등 다양한 건물이 있는데 그 현판들이 서예 전시회를 방불케 한다.

두륜산 주차장에서 대흥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나무터널이 끝날 즈음 눈에 띄는 전통한옥이 있다. 대부분의 상가가 주차장 밖으로 이전한 후 이곳에 유일하게 남은 유선여관이다. 영화 서편제, 장군의 아들의 촬영지로 이용됐을 만큼 아름답다.

대흥사에서 시작되는 골짜기 곳곳에는 암자가 많다. 이 중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킨 초의 선사와 추사 김정희가 교류했다는 일지암이 유명하다.

대웅전에서 일지암까지는 700m. 대흥사를 지나 좁은 산길을 따라 30분 정도 올라가면 초가지붕이 푸근한 일지암이 나타난다. 이곳은 초의 선사가 말년을 지낸 곳으로 우리 차 문화의 성지가 됐다.

일지암 뒤편에는 초의 선사가 찻물을 받았다는 샘물, 유천이 있다. 젖샘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샘물이 희뿌연 젖색을 띠고 있다. 물맛도 달콤하다. 스님이 출타하지 않은 날에 가면 유천의 물을 끓여 만든 차를 얻어 마실 수 있다. 굳이 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일지암 툇마루에 앉아 겹겹이 펼쳐진 산의 능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잡념이 사라지는 듯하다. 이곳은 맑은 날도 좋지만 비가 온 뒤 운무가 자욱하게 낄 때나 눈이 올 경우 더욱 운치가 있다. 일지암 061-533-4964글=최미선 여행플래너 tigerlion007@hanmail.net

사진=신석교 프리랜서 사진작가 rainstor49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