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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칼렛과 남북전쟁

Posted April. 14, 2011 09:25   

12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와 똑같은 드레스를 입은 미국 중년여성의 사진이 실렸다. 허리둘레 20인치(처녀시절엔 18인치 반)의 스칼렛과는 거리가 먼 몸매지만 스칼렛 같은 옷을 입고 영화 속에 푹 빠져 사는 바람족() 중 하나다. 영화에서는 스칼렛이 애쉴리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딱지맞고, 그 민망한 장면을 능글맞은 레트에게 들켜버렸다. 그래서 홧김에 순진한 남자 찰스의 청혼을 승낙한 날 바로 전쟁이 터졌다. 1861년 4월 12일 시작된 남북전쟁이다.

남북전쟁 발발 150년, 소설 바람과 출간 75년을 맞아 미국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아름답고도 강렬한 사랑의 서사시로 기억된 바람과의 소설과 영화도 남북전쟁의 틀에서 다시 읽는 작업도 활발하다. 특히 미국이 재정 적자가 심각해지고 세금 문제로 논란을 빚으면서 바람과를 납세자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시각이 주목받는다.

개미허리로, 여우짓으로 남자들을 홀리던 스칼렛은 패전으로 폐허가 된 고향땅 타라에 돌아와 절망했다. 멋진 남부신사였던 아버지는 정신이 나갔고 흑인노예들은 도망쳐 버렸다. 스칼렛은 타라의 흙을 움켜쥐고 부르짖었다. 절대로 다시는 배를 곯지 않겠어.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고, 사람도 죽일 거야. 타임지 최신호는 스칼렛을 강인하게 변모시킨 것은 타라에 매겨진 토지세였다고 분석했다. 세금 낼 돈을 구하기 위해 돈 많은 남자와 애정 없는 결혼을 하고, 무섭게 돈을 벌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큰 정부, 큰 세금에 반대하는 스칼렛의 감정은 지금도 미국남부 사람들의 성향에 깊이 각인돼 있다. 작은 세금,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보수적 유권자들인 티파티 사람들에게 작품의 무대인 조지아와 애틀란타는 성지()나 다름없다. 남북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선 전쟁 발발 150년이 됐는데도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은 모양이다. 남부 사람들은 전쟁이 노예제 때문에 일어난 것을 부인하고 싶어 한다고 타임지는 지적했다. 대신 남부의 명예와 자유를 위해서 싸웠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현실이 어려울수록 그럴듯한 명분으로 화장하는 경향이 있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