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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국선언

Posted June. 26, 2008 03:06   

시국()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당면한 국내 및 국제적 정세로 돼 있지만 시국선언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은 여러 각도에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대체로 1960년 4?19혁명 이후 반세기에 걸친 민주화 과정에서 생겨난 집단적인 정치적 의사 표현방식을 뜻한다. 정치적 사회적 혼란상황이나 정부가 민의()에 눈을 감고 있을 때 대학교수를 비롯한 지식인과 종교인, 재야인사들이 정국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는 선언이었다.

시국선언이 유난히 많았던 시절은 4?19 전후와 1970년대의 유신()시대, 10?26 및 12?12 직후의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6월 항쟁 때였다. 그 시절의 시국선언은 독재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 행사라는 의미가 있었다. 4?19 당시엔 전국 대학교수단의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시국선언은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독재와 인권문제가 주요 이슈였던 유신시대와 6월 항쟁 때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시국선언의 주무대였던 서울 명당성당은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다.

시국선언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을 결집시키는 힘이 있었다.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리는 명단이 길어지면 군부독재정권으로서도 큰 부담이었다. 6월 항쟁은 민주화의 원년()을 열었다.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4?13호헌()선언, 연세대생 이한열군 최루탄 사망사건으로 불붙은 각계의 시국선언이 6월 항쟁에 힘을 보탰다. 결국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후계자인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자 그의 건의 형식을 빌려 요지부동처럼 보이던 대통령 간선()을 버리고 직선제를 수용했다.

5월 초부터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계속되면서 많은 단체들이 시국선언 형태의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어제 남덕우 전 국무총리 등 원로급 인사들의 모임인 한국선진화포럼도 최근 상황을 우려하는 시국선언을 채택했다. 시국선언에는 좋은 말도 많이 들어있지만 그 명칭에 식상()한 국민도 늘어나고 있다. 민주화를 이루어 민의를 외면하는 독재정권도 존재하지 않는데 흘러간 이름을 붙이는 것 같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