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 서울대 교수 ‘조선의 강’ 펴내 옛 문인-화가 작품속 시선 따라가며… 우리 강 유역에 남은 인문경관 탐색 “산업화로 파괴된 옛 강 모습 아쉬워”… 남한강-낙동강 등 7개 강 찾아 고증 지리-역사-미학 넘나들며 운치 더해
1일 한강이 보이는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 옥상에 선 이종묵 서울대 교수. 그는 “오늘날 여의도(汝矣島)는 ‘너 여(汝)’자를 쓰지만 원래는 넓다는 뜻의 ‘넙섬’이었다”며 “의암호(衣巖湖) 역시 ‘옷(衣)’과는 무관하고, 옛날에 시커먼 바위를 ‘옻(漆) 바위’로 불렀던 것이 한자로 잘못 표기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아스라한 명지도 강물은 남쪽에 다하는데(鳴島蒼茫水盡南)/널다리 초가 주막에 버들가지 늘어져 있네(板橋茅店柳毿毿)./햇살 비치는 흰 모래밭 지난 밭두둑 길에(日照白沙田畔路)/쌍쌍이 소금 실은 수레에 적삼이 새빨갛네(鹽車兩兩茜紅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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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위를 만나면 강은 굽이 흐르지만 사람은 질러서 길을 냅니다. 돌아가면 어떻습니까. 늦게 가면 어떻습니까. 사람도 강처럼 구불구불 살아야죠.”
‘어떻게 앞서 내달릴 것인가’가 화두처럼 여겨지는 시대, 역사와 문화의 ‘희미한 옛 기억’을 되살리고자 하는 이 교수의 느린 말투는 딱 선비 같았다. 그는 한강의 ‘저자도(楮子島)’ 얘길 꺼냈다.
겸재 정선의 그림 ‘송파진’. 그림 속 송파강은 오늘날 사라지고 석촌호수로만 남았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근대 들어 국유화된 하천구역은 도로부지 1순위였고, 산업화는 강둑의 모습을 상전벽해로 만들었다. 그렇게 ‘질러가는 일’은 경제 발전을 위해선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을까. 이 교수는 “원래 영산강은 전남 담양에서부터 내려오는 물길 양쪽으로 백사장과 대숲이 이어졌는데, 지금은 도로에 파 먹혔다”며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았다면 관광자원으로 따져도 엄청났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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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간은 지리학과 역사학, 미학을 아우른다. 조선시대 문집과 읍지, 고지도, 회화 자료를 바탕으로 답사와 고증을 더했다. 다루는 강은 남한강과 북한강, 임진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낙동강 등 7개다.
대중서보단 연구서에 가깝지만 “고운 배로 아침에 공산성을 나서니(蘭舟朝發錦江城)/천 리의 부소산이 한 움큼 푸르구나(千里扶蘇一抹靑)./강에는 봄바람이 끊임없이 부는데(兩岸春風吹不斷)/흰 갈매기 강 위에 조각배가 가볍네(白鷗波上片帆輕).”(이동표·1644∼1700, ‘유백마강록·遊白馬江錄’에서) 같은 운치가 시종일관 넘친다.
이 교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몸담았던 서울대에서 8월 정년을 맞는다. 대학원에 가서 무엇을 공부할까 고민하던 시절, 고교 1학년 때 ‘푸른 산 안개’를 뜻하는 한자 ‘람(嵐)’을 알게 되고 좋아했던 일이 생각나 한문학을 택한 게 평생의 업이 됐다고.
이 교수는 “산(山)과 바람(風)이 있으면 그 아래는 물이 있을 것”이라며 “돌이켜보면 공부가 강으로 갈 수밖에 없었구나 싶다”고 했다. 이어 “퇴임 뒤 여력이 된다면, 노인들도 갈 수 있는 뛰어난 계곡의 인문 경관을 정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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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