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
세금 사이트에서 겪은 문제의 대부분은 용어를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외국인 주민이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인 문제와 마주하기도 한다. 이번 주에는 그런 일을 오랜만에 겪었고, 몹시 화가 났다.
나는 ‘찐축구팬’이다. 아무래도 잉글랜드 출신이니까. 최근에는 K리그 FC서울 경기 500회 관람을 달성했다. 홈 경기 시즌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가능하면 상대팀 홈구장에서 열리는 원정 경기에도 간다. 하지만 요즘 원정 경기 티켓을 구하는 건 쉽지 않다. 표를 구하려면 웬만한 방탄소년단(BTS) 팬 못지않은 티케팅 실력이 필요하다. 보통 원정 티켓은 많아야 1000장 정도 오픈된다. 마우스를 한 번만 잘못 클릭해도 순식간에 대기번호가 1만 번대로 밀려난다. 그렇다 보니 가고 싶어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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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앱을 다운로드하고 회원 가입을 시도했다. 그리고 바로 문제가 시작됐다. 공동인증서로 로그인하고 문자 인증까지 마쳤는데 다음 단계에서 오류 메시지가 떴다. 영어 이름은 입력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내 이름은 영어 이름뿐이고, 여권과 한국 정부 등록 정보에도 그대로 적혀 있다. 이름을 한국어로 입력하면 공동인증서 정보와 일치하지 않아 본인 인증이 불가능해진다. 그야말로 답이 없는 악순환이었다.
보통 이런 문제는 고객센터나 지점을 통해 해결된다. 나는 가까운 지점을 직접 찾아갔다. 지점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다른 고객의 약 90%가 노년층이었다. 순간 깨달았다. 우리 모두 비슷한 이유로 그곳에 와 있었다는 것을. 시스템이 애초에 우리 같은 사람들을 고려해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직원은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거라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90분 동안 우리는 온갖 방법을 시도했지만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내부 고객센터에 전화해 새로운 해결책을 듣고 다시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실패였다. 과정은 1993년 개봉한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 같았다. 전화한다. 해결책을 듣는다. 다시 시도한다. 그리고 또 실패한다. 결국 얻은 결론은 이 앱에 가입하려면 해당 회사의 주력 서비스에 먼저 가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티켓 구매 뒤 바로 해지하면 된다는 설명도 들었지만, 그건 해결책이 아니라 임시방편일 뿐이다.
나처럼 한국에 오래 살고 한국어를 어느 정도 능숙하게 하는 외국인이면 “한국 사람 다 됐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기분 좋은 말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나는 여전히 외국인 주민이고, 그렇기 때문에 특정 서비스 이용에 제약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경우에는 법 때문이고, 어떤 경우에는 차별 때문이며, 또 어떤 경우에는 단순한 시스템 설계 문제 때문이다. 이번 회사 역시 외국인 주민 사이에서 비교적 친화적이라는 좋은 평판을 가진 곳이었고, 실제로 나를 도우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코딩 오류 하나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스템이 외국인 주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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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