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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말한 것[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41〉

입력 | 2026-05-08 23:06:00


그가 말했다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그가 말했다 사실은 나쁘다고 아주 나빠 보인다고

그가 말했다 폐 한쪽에서만 서른두 개까지 세다가

그만뒀다고

(중략)

내가 그 말을 완전히 소화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잠시 동안 그리고 그도 나를 마주보았다 그때였다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사내의 손을 잡아 흔든 건

여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게 주어본

적이 없는 걸 내게 준 사내

아마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던 것 같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라


―레이먼드 카버(1938∼1988)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자신이 죽으리라는 것을 ‘진짜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죽음을 알고 보고 겪지만, 자신의 죽음만은 오지 않을 미래처럼 여긴다. 어쩌면 죽음을 믿지 않아야 삶에 집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의사를 만나 “여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게 주어본/적이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유감이지만, 당신은 곧 죽게 됩니다.

화자는 의사에게 “아주 나빠 보인다고”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는 담담하게 의사의 말을 전하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기묘한 아이러니를 포착한다. 화자는 죽음을 선고받은 자리에서조차 의사에게 악수를 건네고 고맙다는 인사치레를 한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라” 한사코 삶의 관성에 붙들려 삶의 방식을 따르려는 몸을 보여준다.

레이먼드 카버는 단편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부터 시와 소설을 같이 썼다. 그에게 시는 그냥 한 번 써보는 장르가 아니었고 평생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카버의 소설엔 시가 들어 있고, 시에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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