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걱정 직장인 필독 레시피] 외국계 대기업 임원 출신 문화관광해설사 직장생활 때 영어 꾸준히 갈고 닦아 교통-식사비만 받으며 서울 해설… 은퇴 후 봉사활동 희망자에 최적 새로운 관광지식 꾸준히 공부하며, 일할 땐 두세 시간 걸으니 운동도 육체적, 정식적으로 오히려 큰 도움… 숲해설-산림치유지도 자격도 따내
최경무 문화관광해설사가 이달 2일 서울 종로구 인왕산 수성동 계곡에서 관광객들에게 태블릿으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보여주면서 진경산수화 속 서울 풍경을 해설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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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10년째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경무 씨(72). 한국, 특히 서울의 아름다움을 유창한 영어로 해설하는 최 씨는 미국계 화학회사 듀폰의 임원 출신이다. 경복궁과 창덕궁, 청계천과 인사동, 북촌과 서촌, 낙산과 남산 성곽길까지…. 외국인 관광객과 함께 걸으며 서울의 봄을 만끽하는 그의 얼굴엔 웃음과 활력이 넘쳐 흘렀다.
“2014년 은퇴하고 처음 몇 달은 여행도 다니고 골프도 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행도, 골프도 하루이틀이지 계속할 순 없더라고요. 뭔가 소속감을 갖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국인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체득한 영어 능력을 활용할 곳을 찾아봤습니다.”
최 씨는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에 도전했다. 외국어 능력은 토익, 토플 같은 공인 외국어자격증을 제출해야 한다. 이어서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필기시험은 국사, 관광자원, 관광법규 등의 과목을 치르고, 면접은 관광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외국어로 테스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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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울시청 근처 학원에 다니며 1년간 준비한 끝에 국가 공인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은퇴 후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시험에 합격한 후 실제 관광통역안내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1년 만에 그만뒀어요.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우선 새벽같이 인천공항에 가서 외국인 관광객을 픽업하면서 시작해 밤늦게 끝나는 일이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또, 우리도 외국에 나가면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 이왕이면 여성을 관광가이드로 선호하지 않습니까. 누가 뭐라 한 사람은 없지만, 본의 아니게 자식 같은 젊은이들하고 경쟁하는 것 같아서 접기로 마음 먹었지요.”
그는 당초 은퇴하면 ‘내 시간의 3분의 1은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 계획대로 봉사활동에 전념하기로 했다. 마침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 모집 공고가 났다. 관광통역안내사는 노력에 따라 하루에 수십만 원도 벌 수 있는 일자리였지만, 문화관광해설사는 교통비와 식사비 정도를 지원받는 봉사활동에 가까운 일이었다.
“관광통역안내사 시험 준비와 1년간 실제 활동하면서 얻은 경험도 있고 해서, 도보 관광 코스를 10여 차례 따라다니면서 문화관광해설사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미리 들어봤습니다.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문화관광해설사로 선발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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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해설을 듣는 분들 국적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 호주는 물론이고 요즘엔 독일 스페인 튀르키에 같은 유럽 국가도 많아지고 있어요. 심지어 브라질 멕시코 같은 중남미와 나이지리아 같은 아프리카에서 오신 분도 많아지고 있어요. BTS와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 같은 K컬쳐 파워를 실감합니다.”
―기억에 남는 관광객은.
경복궁에서 브라질 가족 관광객을 위해 영어 해설을 맡은 최경무 씨(왼쪽).
―문화관광해설을 할 때 지키는 원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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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보 관광은 여러 궁궐과 인사동, 북촌, 서촌, 청계천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구 하이브 사옥, 여의도, 한강, 노들섬 등 K팝 ‘성지’ 투어까지 여러 코스가 있다. 관광객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날짜와 코스를 선택하고, 해설사는 자신이 해설할 수 있는 날짜와 코스를 입력해 놓으면 자동적으로 짝이 지어지는 시스템이다. 지방 기초단체나 광역단체에서는 해설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하루 종일 근무하기도 한다. 각 지자체마다 업무 체계가 달라 문화관광해설사 급여나 수당도 다 다르다.
최 씨는 “은퇴 후에도 소속감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문화관광해설사라는 직업이 육체와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예약이 들어오면 내일은 어떤 손님을 맞게 될까 설레는 마음이 듭니다. 문화관광해설사라는 소속감은 커다란 마음의 안정을 주지요. 도보 관광 코스를 해설하다 보니 하루에 2∼3시간씩 꾸준히 걷게 돼요. 적당한 운동이 저절로 됩니다. 제일 듣고 싶은 말은 ‘일하는 게 즐거워 보여요’에요. 매일 밝은 표정의 관광객들을 만나서 해설하니 제 마음도 진짜로 즐거워지더군요. 문화관광해설사 일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엄청난 도움이 됩니다.”
최 씨는 궁궐에 갈 때마다 심겨 있는 나무와 피어 있는 꽃 들이 궁금해서 인터넷 등으로 찾아보다가 숲해설가 공부까지 하게 돼 됐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경기 오산에 있는 ‘물향기 수목원’에서 숲 해설 봉사를 하고 있다. 수당은 문화관광해설사보다도 훨씬 적지만 ‘힐링’을 위해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변화된 표정에 보람을 느껴서 5년째 숲 해설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내친 김에 산림치유지도사 2급 자격증도 따냈다. 치유의 숲이나 산림치유원에서 숲속 힐링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지원할 수 있는 자격증이다.
“산림치유지도사 2급 자격증을 따려면 우선 대학에서 산림이나 보건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 지도사 양성 기관에 들어갈 자격을 줍니다. 저는 화학공학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방송통신대 농학과 3학년에 편입했어요. 2년간 공부한 끝에 올해 1월 대전에 가서 자격증 시험을 보고 합격했습니다. 응시자 10명 중 2명 정도만 붙을 만큼 합격률이 낮은 시험입니다. 뒤늦게 공부하느라 무척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관광통역안내사, 문화관광해설사, 숲해설가, 산림치유지도사는 자격증만 따면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새로운 지식을 쌓으며 공부해야 하는 일”이라며 “이 활동을 하면서 뇌 건강, 특히 치매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