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의 ‘수레를 탄 아이들’(1778년). ⓒToledo Museum of Art
프란시스코 고야의 ‘독서하는 남자들’(1820~1823년). ©Museo Nacional del Prado
● 승승장구하던 젊은날의 에너지
고야는 1770년대 중반부터 왕립 태피스트리 공장을 위해 60점이 넘는 대형 밑그림을 그렸다. ‘수레를 타는 아이들’은 그중 하나.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도현 컬쳐앤아이리더스 큐레이터는 “당시 유행하던 로코코 양식 특유의 밝고 우아한 색조를 유지하면서도 스페인적인 강한 명암과 감정의 생기를 더한 작품”이라며 “스페인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이어지는 세련된 형식미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광고 로드중
하지만 말년에 이른 고야의 그림은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로 뒤집힌다. 1820년부터 1823년까지 고야가 자기 집 벽에 그린 ‘흑색 회화’ 연작은 암울해진 화풍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와 ‘마녀의 안식일’ 등 연작 14점에선 불안하고 공포스러운 주제가 검은색과 회색, 갈색 등의 물감으로 거칠게 표현됐다.
특히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에서 광기 어린 눈을 번뜩이는 아버지가 피를 뚝뚝 흘리며 아이를 뜯어먹는 모습은 충격과 혼돈을 준다. 누군가에게 의뢰받은 것도, 전시하기 위한 용도도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수프를 먹는 두 노인’(1819~1823년). ©Museo Nacional del Prado
● “절망과 고독이 독창성을 낳다”
고야가 ‘수레를 탄 아이들’에서 보여준 인간미와 낭만적 색채는 어쩌다 사라지게 된 걸까. 톨레도미술관 측은 “청력 상실과 나폴레옹 전쟁, 프랑스 혁명 등을 겪은 이후 고야는 인간의 고통과 불안을 탐구하는 어두운 화풍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한다.
평탄했던 그의 예술 인생을 뒤흔든 첫 번째 시련은 1792년경에 찾아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중병을 앓은 끝에 청력을 상실했다.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줄어든 정적 속에서 고야의 시선은 세속 이면의 어두운 심연으로 향했다. 설상가상으로 혁명과 전쟁이 이어지며 수많은 죽음을 접한 고야는 크나큰 회의와 절망에 빠지고 만다. ‘흑색 회화’는 노년의 작가가 대면한 시대적 절망과 내면의 고독이 담긴 처절한 기록이었던 셈이다.
광고 로드중
“아버지는 고립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독창성을 찾았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