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훈. 관객들 사이에서는 ‘단종오빠 또 보러 간다’는 반응이 이어지며 N차 관람 열풍이 나타나고 있다. 사진=박지훈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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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오빠 또 보러가요.”
최근 영화관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자주 올라온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배우 박지훈이 연기한 단종 캐릭터를 두고 관객들이 붙인 표현이다. 역사 속 비극적 왕을 ‘오빠’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는 반응은 작품이 젊은 관객층까지 확산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개봉 이후 관객을 꾸준히 모으며 비수기로 꼽히는 3월 극장가에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개봉 31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11일 기준 누적 관객 1200만 명을 넘어섰다.
영화 산업에서는 이번 흥행을 단순한 인기 작품이 아니라 관람 패턴 변화와 배급 전략, 콘텐츠 확산 구조가 맞물린 사례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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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흥행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관람 패턴이다. 관객 사이에서는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N차 관람’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최근 영화 시장에서는 특정 배우나 캐릭터에 대한 팬덤이 초기 관람을 형성하고 이후 일반 관객으로 확산되는 구조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다시 보러 간다” “또 보고 싶다”는 관람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 산업에서는 이를 팬덤 기반 관람이 입소문 확산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해석한다.
특히 역사 소재 영화임에도 10~30대 관객층의 반응이 적극적으로 나타난 점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역사적 인물을 현대적 감성으로 소비하는 방식이 관람 확산의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화 흥행 이후 박지훈이 출연했던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이 OTT 플랫폼에서 다시 관심을 받는 등 배우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함께 확대되는 모습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역의 박지훈(왼쪽)과 엄흥도 역의 유해진. 작품은 개봉 이후 입소문을 타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쇼박스
● 삼일절 연휴가 만든 흥행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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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삼일절 하루 동안 약 81만 명의 관객이 몰리며 개봉 이후 최고 일일 관객 수를 기록했다. 삼일절 연휴(2월 27일부터 3월 2일) 기간 약 25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이 극장을 찾으며 관객 증가 속도가 빠르게 높아졌다.
이 같은 흐름은 영화가 개봉 초반 관객 집중형이 아닌 입소문을 기반으로 관객이 꾸준히 늘어나는 ‘롱런형 흥행’ 구조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항준 감독 특유의 유쾌한 홍보 스타일도 작품 화제성을 높이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입소문 시간을 확보한 개봉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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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빈 쇼박스 홍보팀장은 “개봉 시점을 조금 앞당긴 것은 완성도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입소문이 날 수 있는 영화라고 판단해 언론 시사회와 일반 시사회를 비교적 이르게 진행했고 관객 반응이 확산될 시간을 확보하려는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배급사인 쇼박스 측은 가족 단위 관객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해 설 연휴 관객 수요를 겨냥한 개봉 시점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 극장 밖으로 확장되는 콘텐츠 소비
영화 흥행 이후 단종과 관련된 역사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일부 서점에서는 단종 관련 역사서 판매량이 증가했고, 강원 영월 청령포 등 관련 역사 유적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콘텐츠 소비가 영화 관람을 넘어 역사·관광 등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이 평론가는 “최근 콘텐츠 시장은 취향이 세분화되면서 모두가 아는 히트작이 줄어든 상황”이라며 “관객들은 여전히 ‘남들도 보고 나도 보는’ 공통 경험을 원한다”고 말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 ⓒ 뉴스1
● “1000만 영화가 시장 분위기를 바꾼다”
최근 극장 관객 감소와 투자 위축이 이어지면서 한국 영화 시장에서는 대형 흥행작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한국 영화 시장은 특정 작품에 관객이 집중되는 ‘쏠림 구조’가 강한 편이다. 대형 흥행작이 등장해야 투자 심리가 살아나는 흐름이 반복돼 왔다.
실제로 한국 영화에서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작품은 2024년 ‘범죄도시4’ 이후 약 2년 만이다. 극장 관객 감소와 투자 위축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나온 기록이라는 점에서 업계 관심도 크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특정 요소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영화 산업에서는 이번 사례가 팬덤 기반 관람 구조, 입소문 중심 배급 전략, 콘텐츠 소비 확장이 맞물릴 때 한국 영화가 다시 대형 흥행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보고 있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