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배럴당 90달러 돌파…美 고용 위축 조짐도 1970년대 ‘오일쇼크’같은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커져 원유 의존도 높은 한국, 유가 급등 상황에 가장 취약 “사태 장기화시 성장률 0.8%p↓·물가상승률 2.9%p↑” “물가 억제하고 경제 심리 꺾이지 않도록 관리해야”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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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경제가 경기 침체와 물가 급등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 이후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고용 감소 등 경기 하강 조짐까지 감지됐다. 중동 리스크가 지속될 경우 중동에 대한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이날 배럴당 90달러 선을 돌파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12.21% 상승한 배럴당 90.90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8.52% 오른 배럴당 92.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와 브렌트유 가격은 중동 사태가 발발한 지난달 27일부터 현재까지 각각 35.6%와 27.2%씩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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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례를 보면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단기적인 변동성 요인으로만 작용하고 글로벌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은 적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때도 국제유가와 금융시장 혼란은 단기에 그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의 지상군 투입 가능성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장기 봉쇄가 거론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현재 미국과 이란은 협상 가능성을 배제한 채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 연구 기관들은 사태가 장기화하고 고유가가 지속된다면 글로벌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공급 충격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드물게 발생하는 경제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개선되면 수요가 확대돼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하강하면 수요도 함께 줄어 물가가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중동 전쟁으로 인해 원유 공급이 위축된 1970년대 ‘오일쇼크’와 같은 상황에서는 기업의 생산비용이 증가하고 가계의 소비 여력도 위축되면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났다.
스태그플레이션은 한 나라가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경제 상황 중 하나로 투자자들에겐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경제 위기 상황이 벌어져도 정책을 통한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오를 수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기는 더욱 위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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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경제의 원유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생산을 위해 소비하는 원유량이 가장 많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유가 급등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도 가장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미-이란 전쟁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향후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유가 수준에 따라 4단계로 나눠 영향을 분석했다.
연구원은 중동사태 장기화로 수개월간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비관적 시나리오’에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관측했다. 이 경우 경제성장률이 최소 0.3%p 하락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p 오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또는 연합군이 지상군을 투입하거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되는 ‘오일 쇼크’ 시나리오 하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50 달러 이상으로 치솟는 것으로 전망됐다. 이 경우 성장률은 최소 0.8%p 하락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9%p나 급등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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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현재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 그 말은 아직 바닥을 안 찍었고 회복 국면이 아니라는 뜻”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내수에는 치명적이다. 글로벌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 조짐까지 나타나면 수출도 꺾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 본부장은 “현재 상황에서는 물가가 첫 번째 타깃이 돼야 한다”며 “주유소들이 급격히 가격을 올리자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그건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고 전쟁이 장기화되면 스테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날 수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이미 경기가 침체돼 있는 상황인데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부채 위기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유가가 오르면 금리를 높였는데 지금은 금리를 인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거시정책을 사용하는 데는 상당히 한계가 있고, 미시적으로 유류세를 인하하거나 인프라 투자를 늘려 건설경기를 부양하고 일자리도 늘려주는 정책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세종=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