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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무속인’에 87억 뜯기고 사기죄 수감…檢이 밝힌 진실은?

입력 | 2026-03-03 16:21:00

학부모 모임서 만난 40대 엄마에
무속인 소개해준다며 가스라이팅
성적 영상 찍게 해 협박하기도
피해자 검찰에 3차례 감사편지 보내



서울남부지검


“고위층 사주를 봐주는 유명 무속인이 있어요.”

재력가 여성 A 씨는 2017년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또래 여성 장모 씨(49)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장 씨는 ‘조말례’ 라는 무속인의 휴대전화 연락처까지 건넸다. A 씨가 자녀가 보이는 이상 증상으로 고민하던 무렵이었다. 그는 곧장 ‘조말례’에게 문자메시지로 상담을 요청했다.

그런데 조말례는 A 씨 자녀의 이상 증상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고, 치료 방법까지 알려줬다. A 씨는 조말례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됐다. 문자메시지를 통한 상담은 5년여간 이어졌다.

● ‘가짜 무속인’ 만난 뒤 파괴된 가정

상담을 이어가는 동안 A 씨의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그는 조말례로부터 “아이를 지방에 따로 떼놓지 않으면 큰 화가 닥칠 것”이란 얘기를 들은 뒤 자녀와 따로 떨어져 살았다. “너희 남편 회사에 거액을 투자할 건데 담보를 달라”는 조말례의 이야기에 현금 10억여 원을 건네기도 했다. “성적 행위가 담긴 동영상을 찍어서 나한테 보내라”는 지시도 그대로 따랐다.

동영상을 전송받은 조말례는 돌연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A 씨는 빌린 돈까지 합쳐 77억여 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그 무렵 남편과도 사이가 나빠져 이혼하게 됐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한 A 씨는 2024년 사기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뒤 구치소에 수감됐다. 구속된 뒤에야 그는 경찰에 “내가 조말례를 소개한 장 씨로부터 가스라이팅(심리지배)를 당한 것”이라는 진술서를 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시작되지 않았다.

조말례의 실체는 이로부터 1년 뒤 A 씨와 이혼한 전남편이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드러났다. 전남편은 2019~2020년 자신이 운영 중이던 회삿돈 65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고 검찰에 불구속 상태로 넘겨졌다. 이때 전남편은 “빼돌린 돈을 모두 전 부인인 A 씨에게 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담당 검사는 전남편이 진술과는 달리 실제로는 빼돌린 회삿돈 대부분을 조말례를 소개한 장 씨 측 계좌로 보낸 사실에 주목했다. 장 씨는 이 돈으로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샀고, 전남편은 장 씨와 여전히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장 씨로부터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라는 A 씨 진술을 다시 확인해 봐야 한다고 판단한 검사는 직접 보완수사를 결정했다.

● 보완수사로 드러난 ‘가짜 무속인’의 실체

구치소를 찾아간 검사는 A 씨로부터 “나는 전남편에게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직접 수사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았다. 전남편의 주변인들도 일관되게 “전남편이 장 씨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A 씨의 전남편을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그리고 A 씨의 고소에 따라 장 씨 등에 대한 수사도 개시했다.

강제 수사에 나선 검사는 ‘조말례’가 장 씨와 그 남편이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 부부가 무속인 행세를 하면서 5년여간 A 씨와 전남편을 속였던 것.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린 뒤 매달 이자를 갚는 처지였던 장 씨 부부는 별다른 근로 소득이 없는데도 A 씨를 만난 뒤 빚을 모두 청산했다. 장 씨 부부는 A 씨 부부로부터 받은 돈으로 서울 서초구 아파트를 포함한 서울 소재 아파트 2채와 상가를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단장 하충헌)은 지난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공갈과 사기 혐의 등으로 장 씨 부부를 구속기소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남부지검 중경단 정광일 부장검사는 “20여 년간 근무하면서 이렇게 충격적인 사건은 처음 본다”며 “(가스라이팅 당한) 피해자의 비상식적인 진술로 초기 수사가 쉽지 않았지만 보완수사를 통해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인권을 보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평범한 삶을 살았던 피해자들이 피고인들을 만난 뒤 거액을 잃었고 가정이 모두 파괴됐으며 수감까지 된 것”이라며 “보완수사를 통해 암장될 뻔한 진실이 드러났다”고 했다.

장 씨 부부가 구속기소된 뒤 피해자 A 씨는 검찰에 “포기했던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다”는 감사 편지를 3차례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장 씨 부부가 A 씨 외에도 다른 주변인을 속여 수십억여 원을 빼앗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추가로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장 씨가 구입한 서울 서초구 아파트 등에 대해서도 형이 확정되기 전에 처분할 수 없도록 추징보전 해둔 상태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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