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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거의 다해감을 알려면, 깊은 골짜기로 달려드는 뱀을 보라.
뱀의 긴 몸통이 절반이나 사라졌다면, 떠나려는 그 뜻을 누가 막을 수 있으랴.
하물며 그 꼬리를 묶어 붙들려, 부지런히 애쓴대도 어쩔 수 없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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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닭아, 잠시 울지 말아다오. 경점(更點) 북소리가 더해질까 두렵구나. (중략)
힘써 오늘 이 밤을 끝까지 보내자. 젊음은 아직 자랑할 만하다네.
(欲知垂盡歲, 有似赴壑蛇. 修鱗半已沒, 去意誰能遮. 况欲繫其尾, 雖勤知奈何. 兒童强不睡, 相守夜歡嘩. 晨鷄且勿唱, 更鼓畏添撾. (…) 努力盡今夕, 少年猶可夸.)―‘수세(守歲)’ 소식(蘇軾·1037∼1101)
섣달그믐은 늘 ‘붙잡고 싶은 시간’이다. 한 해의 끝을 시인은 깊은 골짜기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긴 뱀에 비유했다. 이미 몸통의 절반이 사라졌는데, 꼬리를 묶어 본들 무슨 소용이랴. 그럼에도 아이들은 졸음을 억지로 밀치고, 어른들은 닭 울음과 시각을 알리는 북소리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우리에게도 수세·제야·해지킴이 있었다. 잠들면 눈썹이 센다는 말로 아이들을 깨워 두고, 부엌과 곳간, 마루와 외양간까지 불을 밝혔다. 이 풍속은 가족이 함께 앉아 묵은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요즘은 수세를 말해도 대개 스마트폰이 곁에 따라붙는다. 그러다 보면 밤샘이 기다림이 아니라 그저 시간 소비로 끝나기 쉽다. 이 밤만큼은 화면을 내려놓고 올해 놓친 것과 내일 시작할 것을 짚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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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