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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서장훈 버저비터는 두 번 속이도록 설계됐다’… 31년 만에 풀린 1995년 고연전 마지막 4초의 비밀[유재영 기자의 보너스 원샷]

입력 | 2026-02-01 10:00:00


2월 1일이다. 겨울만 되면 농구가 더 좋아진다. 그리고 이날이 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995년 2월 1일, 농구대잔치 고려대와 연세대 경기. 역대급 명승부다. 프로농구 시즌이 한창인데 웬 농구대잔치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만 해도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초(超)역대급 승부다. 이 기억을 한번 꺼내 들면, 다시 프로농구 보는 맛이 살아날까 싶어서 그런다.

한국 농구 역대급 4초의 승부. 연세대 서장훈이 고려대와의 라이벌 전 4초를 남겨놓고 75-75에서 극적인 버저비터로 승리의 마침표를 찍는 장면. KBS 유튜브 캡쳐.

●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한 ‘1분 25초’

그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제1체육관은 1만5000명에 육박한 관중과 ‘오빠 부대’ 함성으로 가득 찼다. 옆 사람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후반 종료 1분 25초 전. 연세대가 74-66으로 앞서자 TV 중계 캐스터 목소리엔 힘이 빠졌다.

“연세대의 승리에요.”

고려대 김병철의 파울. 연세대 공격을 끊고 빠르게 반격해야 했다. 연세대 우지원의 자유투. 캐스터는 “78개 던져 71개 성공, 성공률 91%”라고 말했다. 해설을 맡은 1970년대 레전드 유희영 선생도 “1분 13초. 연세대의 승리에요”라며 긴장을 풀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묘하게 흐름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우지원이 원 앤드 원 자유투를 놓쳤다. 곧바로 김병철의 골밑 돌파. 블록슛을 시도하다 반칙을 범한 이상민이 착지하면서 오른쪽 무릎이 꺾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이상민은 실려 나갔다. 김병철은 자유투 두 개를 얻었다. 1구 실패, 2구 성공. 74-67.

이어 고려대 현주엽의 파울. 5반칙 퇴장이다. 다시 우지원의 자유투. 1구는 들어갔지만 2구는 빗나갔다. 75-67. 연세대 응원석에선 “이겼다”는 외침이 터졌다.

그러나 고려대 전희철의 3점슛이 꽂혔다. 47초 남기고 75-70. 다시 고려대의 파울 작전. 신기성도 5반칙으로 코트를 떠났다. 이상민 대신 들어온 김성헌의 원 앤드 원. 그런데 또 1구 실패. 리바운드는 고려대. 이번엔 양희승의 3점포. 75-73. 27초.

캐스터의 멘트가 바뀐다. “하… 아직 모르겠습니다.”

또 우지원을 향한 파울 작전. 유희영 선생은 “자유투가 이만큼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슛감이 좋던 우지원은 다시 원 앤드 원 1구를 놓쳤다. 리바운드를 잡다 파울을 당한 양희승. 이어 자유투 두 개 성공. 75-75 동점. 16초.

우지원이 엔드라인 쪽을 파고들며 슛을 던졌지만 빗나갔다. 리바운드 다툼 끝에 심판은 연세대 볼을 선언했다. 느린 화면에선 연세대 석주일 손에 맞고 나간 듯 보였다. 고려대 벤치와 선수들은 황보삼남 심판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남은 시간 4초. 마지막 작전 시간.

서두가 길었다. 이 4초 동안 양쪽 벤치에선 무슨 작전이 내려졌을까.

연세대의 공격. 사이드라인에서 김성헌이 공을 들고 섰다. 구본근은 가까운 쪽 로 포스트, 서장훈은 반대편 로 포스트. 구본근은 전희철, 서장훈은 박재현이 각각 맡았다. 서장훈 쪽 45도엔 우지원, 중앙 외곽엔 석주일. 각각 이지승과 양희승이 수비했다.

김성헌은 잠시 머뭇거리다 외곽으로 빠져나온 서장훈에게 패스했다. 원 드리블. 이어 몸을 살짝 젖힌 페이드어웨이. 부저와 동시에 공이 림을 갈랐다. 연세대의 승리. 심장이 터질 듯한 순간이었다.

한국 농구 역대급 4초의 승부. 연세대 서장훈이 고려대와의 라이벌 전 4초를 남겨놓고 75-75에서 극적인 버저비터로 승리의 마침표를 찍는 장면. KBS 유튜브 캡쳐.

● 아군도 속인 4초의 트릭

그 슛은 예정된 것이었을까. 31년이 지난 지금 당사자들 기억은 흐릿해졌다. 김성헌(소노 팀장)은 “(서장훈에게) 공이 가는 작전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코치였던 박건연 KXO 회장(한국 3x3 농구연맹)도 “패스 타이밍이 늦긴 했다”고 기억했다. 김병철 전 오리온 코치는 “고려대에선 서장훈에게 공이 안 갈 거라고 봤다. 외곽을 막으라는 주문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힌트는 중계 화면에 있을 수 있다. 작전 타임이 끝난 뒤 석주일은 슛 동작을 크게 취하며 코트로 나왔다. 그때 최희암 연세대 감독(고려용접봉부회장)이 “주일아, 주일아”를 외치는 장면이 잡힌다. 이어 서장훈이 우지원 쪽으로 가며 스크린을 하는 척한다. 다시 석주일에 대한 수비를 스크린하는 듯하다가 공을 받는다. 그리고 버저비터. 31년 만에 최 감독이 답을 내놨다.

한국 농구 역대급 4초의 승부. 연세대 서장훈이 고려대와의 라이벌 전 4초를 남겨놓고 75-75에서 극적인 버저비터로 승리의 마침표를 찍는 장면. KBS 유튜브 캡쳐.

“서장훈이 두 번 스크린을 하는 제스처로 우지원과 석주일, 둘을 동시에 살리고 안 되면 장훈이에게 공이 가게 한 작전이었다. 장훈이가 몸을 부딪히는 진짜 스크린을 하면 패스를 받기 어려울 수 있었다. 그래서 ‘하는 척’만 하라고 했다.”

결국 두 번의 트릭이었다. 서장훈의 ‘스크린하는 척’, 그리고 석주일의 과장된 슛 제스처. 상대도 속았고, 같은 편도 속았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의도는 연세대의 승리로 이어졌다.

이래서 궁금했나 보다. 농구가 더 농구답던 시절, 가장 치열하고 눈부신 4초를 기억하길 잘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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