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뇌과학 리포트] 자는 동안 DNA 파괴하는 노폐물 제거
뇌가 없는 해파리도, 헤엄치기를 멈추면 죽는 고래도, 대양을 넘어 이동하는 철새도 모두 잠을 잔다. 사진은 카시오페아 안드로메다 해파리. GETTYIMAGES
뇌가 등장하기 전부터 있었던 잠
최근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해파리의 잠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이 흥미로운 건 해파리에게는 뇌가 없기 때문이다. 해파리는 몸이 방사대칭 구조이고 자포(刺胞: 찌르는 세포)로 먹이를 포획하거나 적으로부터 방어하며 살아가는 자포동물이다. 신경계가 집중된 기관인 뇌를 가진 좌우대칭동물과 달리 분산 신경계를 지니고 있다. 뇌가 없어 뇌파 측정이 불가능한 해파리가 잠을 잔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광고 로드중
연구자들은 또 해파리의 수면을 교란하는 행위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지켜봤다. 만일 해파리의 활동성이 떨어지는 시간이 정말 잠에 해당한다면 사람의 수면을 방해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리라고 예상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하루 중 수족관 조명을 끈 12시간에 해당하는 ‘밤중’에 6시간 동안 수족관 물을 휘저었다. 해파리의 잠을 방해한 것이다. 그러자 다음 날 해파리의 맥동이 느린 시간, 즉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사람으로 치면 밤에 잠을 자려는데 누군가 자꾸 흔들어 깨워 제대로 못 잔 탓에 다음 날 더 오래 자는 것과 같다. 또 수족관에 척추동물의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타자 해파리의 잠이 길어지기도 했다.
해파리가 잠을 잔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노력은 또 있다. 동물이 깨어 있는 동안 생성되는 활성산소 등 노폐물은 DNA에 손상을 입힐 수 있다. 노폐물 양이 몸의 해독 능력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아지면 DNA가 파괴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잠을 자면서 이 노폐물을 없애고 DNA를 보호한다. 연구자들은 해파리에 DNA를 파괴할 수 있는 자외선을 쪼였다. 그랬더니 해파리의 수면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해파리가 자는 시간을 늘려 DNA 손상을 최소화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해파리 같은 자포동물은 좌우대칭동물과 약 5억 년 전에 갈라졌다. 이후 좌우대칭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뇌가 등장했다. 뇌와 잠 중 무엇이 먼저냐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잠’인 것이다. 뇌를 가지지 않은 자포동물도 잠을 자니 말이다.
끝없이 헤엄치는 고래도 잔다
광고 로드중
자는 동안에는 감각계 등이 무뎌져 생존에 취약한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잠을 자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은 신경계를 지닌 생물에게 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경계가 점점 복잡해져 한 곳에 집중된 뇌를 가진 동물에게는 잠이 더더욱 중요하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천적들이 먹잇감으로 호시탐탐 노리는 영양 같은 초식동물도 토막잠을 잔다. 대양을 가로질러 수천㎞ 거리를 쉬지 않고 날아가는 철새도 뇌 좌우 반구가 교대로 잠을 잔다. 죽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헤엄치는 고래도 같은 전략을 쓴다. 동물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복잡하고 큰 뇌를 가진 사람에게 잠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일일이 지키려니 너무 많아 우선순위를 두고 싶다면 진화적으로 오래된 행동에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다. 오래됐다는 것은 곧 반드시 필요하고 매우 중요해 사라지지 않은 것일 테니 말이다. 인류가 나타난 지는 고작 200만 년이지만 잠은 5억 년 전부터 있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하루에 4시간 자는 걸 자랑했을 정도로 잠을 시간 낭비로 여겼다. 하지만 이후 과학이 계속 발달하면서 수면의 중요성은 날로 강조되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23호에 실렸습니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