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종묘의 보수를 맡아 온 정명식 대목수 겸 사진작가가 종묘 영녕전 지붕 위에서 도심을 촬영한 사진. 멀리 왼쪽에 남산의 능선이 보인다. 정명식 대목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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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최근 세운지구 재개발을 두고 ‘개발 대 보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가 종묘에서 180m 떨어진 세운4구역의 고도 제한을 기존 조례상 71.9m에서 145m로 완화해 초고층 개발을 허용하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오랜만에 종묘를 찾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 나는 북촌에 살았다. 동네 사람들과 ‘한사모’(한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시민운동에 참여하며 한옥 지킴이 활동을 했다. 그러면서 여러 한옥을 답사했고, 혼자 종묘를 찾아가기도 했다. 당시 종묘는 관람객이 거의 없어 고요했다. 정전 앞에 넓게 펼쳐진 월대(月臺) 한가운데 서면 바쁜 일상에 잊고 지낸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종묘는 도심에 있지만 도심에서 격리된 숲속의 고귀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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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 나는 일본 교토에서 처음으로 ‘다이몬지오쿠리비(大文字送り火)’를 체험했다. 한국의 추석에 해당하는 오봉(お盆)에 돌아온 조상의 영혼을 다시 보내며 여름의 끝을 알리는 교토의 전통 행사다. 해가 진 저녁 시간 교토를 둘러싼 5개 산에 ‘대(大)’ ‘묘(妙)’ ‘법(法)’ 등의 글자 모양으로 불을 붙여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 교토의 하나된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세 명의 지인과 함께 가장 먼저 큰 ‘대’자에 불이 켜지는 것을 본 뒤 자리를 옮겨 세 글자를 더 지켜보며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맞봤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도시의 품격을 실감했다.
교토는 1000년이 넘는 기간 일본의 수도로서, 문화재를 보호하면서도 현대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관과 민이 함께 협력하며 해법을 모색해왔다. 전통 경관을 보존하고 가꿔 이를 미래로 이어가기 위해 2007년 건물 높이와 디자인 기준을 재검토해 새 도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특히 문화재 주변의 높이 규제를 강화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조망 경관’ 항목으로, 좋은 전망을 도시의 공공자산으로 규정하고 지역 특성에 따라 3개 등급으로 나눠 입체적으로 대응했다. 이것이 이 전통 행사를 지켜온 비결이다.
서울의 현재 경관은 어떤 모습일까. 종묘에서 바라본 서울의 풍경, 남산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모습,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서울의 모습이 궁금해 사흘간 종묘 일대에서 세운상가를 거쳐 남산까지 천천히 걸으며 직접 확인했다.
놀랍게도 남산에서 종묘 정전의 지붕이 일직선으로 또렷하게 보였다. 남산 위 버스정류장에서 내려다볼 때는 주변 빌딩에 가려져 있던 정전의 지붕선이 남산타워 바로 아래까지 올라오니 모두 보였다. 그 순간 감동이 밀려왔다. 그곳에서는 영녕전의 지붕과 창경궁, 창덕궁, 더 멀리 경복궁의 경회루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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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의 역사를 지닌 품격 있는 서울의 경관은 도시의 모습 그 자체로,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수정된 시 조례에 따라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그로 인해 지금의 경관이 가려지거나 바뀐다면 도시의 품격을 훼손하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이 사랑하는 서울의 품격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도 온전히 물려주고 싶다. 물론 개발은 필요하다. 그럴수록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품격 있는 도시 서울을 50년, 100년 후에도 계승할 수 있는 섬세한 설계가 중요하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