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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도 BBC도 놀란 수능 영어 [횡설수설/신광영]

입력 | 2025-12-15 23:18:00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단어 퍼즐이나 스도쿠 같은 퀴즈 코너로도 유명한 신문이다. 퀴즈 푸는 재미로 구독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NYT가 최근 한국에서 ‘불수능’ 논란을 빚은 영어 문항들을 퀴즈로 내보냈다.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법철학이나 게임 관련 뇌과학 이론 등 난해한 지문들과 함께 “당신이라면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까”라면서 독자를 ‘도발’했다. NYT를 즐겨 보는 상대적 고학력 원어민에게도 한국 고3 수험생이 풀어야 할 수능 문제가 만만찮은 도전이라고 본 것이다. NYT는 수능 출제위원장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수능 영어의 고난도는 영국 언론에도 주목의 대상이었다. 영국 BBC방송은 “고대 문자 해독 수준” “미친 시험”이라면서 올 수능 영어 문제를 소개했다. 이런 악명 높은 ‘8시간 연속 시험 마라톤’을 준비하는 데 한국 청소년들은 평생을 바친다고도 했다. 특히 비디오 게임 용어를 소재로 한 39번 문항을 공개했는데, “잘난 척하는 말장난”이다,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글쓰기”라는 독자들의 비판도 기사에 실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수능 영어의 세 문항을 소개한 기사에는 350여 개 댓글이 달리는 등 일반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내가 의대 우등 졸업생인데 한 개밖에 못 맞혔다.” “옥스브리지(옥스퍼드대+케임브리지대)에 응시한 영국 수재들이나 풀 수 있을 정도”라는 반응이 나왔다. 가디언은 이번 수능에서 논란이 된 지문 속 ‘컬처테인먼트(culturtainment)’란 합성어에 주목했다. 그 말을 만든 영국인 교수는 통상적 표현이 아니어서 시험에 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영어 종주국도 기겁하는 수능의 난해함은 영어만의 얘기가 아니다. 학업 능력보단 잔기술로 정답을 찾는 경주에 가깝다는 것이다. 학원가에선 지문을 이해하지 않고도 문제 속 키워드를 지문에서 빠르게 찾아 매칭하는 ‘눈알 굴리기’ 기술을 가르친다고 한다. 차분하게 문제를 풀다간 시험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유형별로 도식화한 뒤 수백 번 문제 풀이 훈련도 반복한다. 시험 기술로 무장한 수험생들을 상대하는 출제자들도 답답할 것이다. 지난 32년간 누적된 기출문제는 물론이고, 시중의 어떤 문제집과도 안 겹치는 문제를 내야 한다.

▷그런 토양에서 생겨난 수능 문제들은 전문가들도 쩔쩔매는 지경에 이르렀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올 과학탐구 문제를 풀어본 KAIST 총장은 “풀이 기술 없인 손도 못 대겠다”며 포기했고, 유명 소설가는 “이런 국어 문제를 다 맞힐 정도면 대학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입용 시험인데 정작 교수가 풀기 어렵고, 다 맞히면 대학 갈 필요도 없다니 수능은 도대체 뭘 평가하려는 시험인지 궁금해진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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