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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아기 쇼핑”…시험관 아기 ‘등급’ 매기는 부부들

입력 | 2025-12-09 07:00:00

영국 시험관 아기 부부들이 법적 허점을 이용, 해외 업체에 7천만 원을 내고 태아의 IQ·키 등을 예측하는 유전자 검사를 의뢰해 배아 등급을 매기고 있다. 사진은 체외수정(IVF) 시술을 진행하는 모습. AP/뉴시스


유전자로 신분이 결정되는 미래를 그린 SF 영화 ‘가타카’(1997년)의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영국의 난임 클리닉에서 체외수정(IVF) 시술을 받는 부부들이 태어날 아기의 지능(IQ)·키·외모 등을 미리 예측하고 배아의 ‘등급’을 매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일(현지 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난임 부부들이 법의 허점을 이용해 배아 유전자 정보를 해외로 빼돌려 분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법상 배아 선별은 심각한 유전 질환을 예방하는 목적으로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 7000만원 내고 ‘태아 성적표’ 제공하는 기업들 

영국의 ‘데이터 보호법’은 환자가 병원에 자신의 의료 데이터 원본(Raw Data)을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체외 수정을 한 부부들이 유전 데이터를 받아 해외 업체에 분석을 의뢰하는 것이다.

이같은 ‘태아 등급 메기기’를 실행하는 곳은 미국의 유전자 분석 스타트업 ‘헤라사이트(Herasight)’가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5만 달러(약 7300만 원)를 내면 횟수 제한 없이 배아를 분석한다. 성별과 예상 키는 물론 심장병·암·알츠하이머·조현병 위험도까지 수치화해 ‘성적표’처럼 제공한다.

실제로 헤라사이트는 공식 홈페이지에 “5개의 배아 중 점수가 가장 높은 것을 고르면 아이의 IQ가 평균 6점 높아질 수 있다”라며 자사의 기술을 홍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헤라사이트에 태아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 29세 여성 A 씨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라며 “사립학교 학비보다 저렴하니 ‘가성비’가 좋은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사실상 법적 규제 없어…“부모들이 아이 쇼핑하게 될 것”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완벽한 인간만이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고, 자연적으로 태어난 이들은 열등한 존재로 차별받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SF 영화 ‘가타카’(1997년)의 한 장면. 영화 가타카 갈무리



이런 현상이 나타나며, 돈있는 사람만 좋은 유전자를 선택하는 ‘맞춤형 아기’가 늘고, 유전적 계급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영국 인간수정·배아관리국(HFEA)의 최고 경영자 피터 톰슨은 “해외에서 검사를 받는 것 자체를 막을방법은 없다”고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영국 클리닉이 이같은 등급을 근거로 배아를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런던 난임 클리닉 설립자 크리스티나 힉먼 박사는 배아 선별 기술을 두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며 “유전자 선별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법적·윤리적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가 특정 등급의 배아 이식을 요구할 경우, 병원이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앵거스 클라크 카디프대 교수는 “부모들이 그저 그런 아이가 아닌 ‘최고의 아이’를 쇼핑하고 있다”면서 “태어날 아기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에는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김영호 기자 rladudgh23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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