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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를 수정헌법 1조로 보장하는 미국에서 정부 및 고위 공직자와 언론 간 소송은 매우 드문 편이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 지난 1기 때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개인이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소송만 30건이 넘고 올해 제기한 소송만도 6건이나 된다. 미국 역사상 최다 기록일 것이다. 언론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5일엔 뉴욕타임스(NYT)가 국방부를 상대로 새로운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NYT가 문제 삼은 것은 국방부가 10월 발표한 보도지침으로 ‘기밀이든 아니든 모든 보도는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내용이다. NYT는 “이 보도지침은 정부가 공식 발표한 내용 이외의 정보를 취재해 국민에게 전달하는 기자들의 역량을 제한하는 것으로 수정헌법 1조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또 보도지침을 어기면 출입을 금지하는 일방적 처벌 규정도 적법 절차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5조 위반이라고 했다. 사전 검열이나 다름없는 보도지침 시행 후 40여 명의 기자들이 출입증을 자진 반납하고 펜타곤 밖에서 취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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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입막음용으로 트럼프 정부가 활용하는 무기는 거액의 소송 폭탄이다.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에게 보낸 ‘외설 편지’를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엔 100억 달러(약 14조7000억 원), “수십 년간 트럼프와 가족, 미국 전체에 거짓말을 퍼뜨려온 최악의 신문”이라 부른 NYT엔 150억 달러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낸 상태다. ABC뉴스(1500만 달러), NBC뉴스와 CBS(각 1600만 달러)엔 명예훼손 소송을 취하하는 대가로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언론 자유와 관련한 기념비적인 판결로,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여부는 원고가 ‘실제적 악의’를 입증해야 성립한다는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1964년), 국가기밀이란 이유만으로 언론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는 ‘뉴욕타임스 대 미국 정부’(1971년)가 꼽힌다. 모두 NYT가 당사자였다. 이번에 국방부를 상대로 낸 NYT 소송도 그 효력은 모든 언론에 미칠 것이다.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를 57위까지 추락시킨 트럼프 정부에 맞서 언론 자유를 지켜내는 또 하나의 판례가 나올지 기대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