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는 “첫 책을 낼 땐 이렇게 많이 알려진 작가가 될 거라곤 꿈도 안 꿨다. 민들레가 사방에 날아다니는 ‘유명세’ 탓에 마음 아프고 힘든 일도 있었다”며 “그래도 결국 민들레를 통해 수녀원에 온 수녀님들도 있다. 사람들에게 기쁨의 역할을 했구나, 역사적으로 상징이 됐구나 싶다”고 했다. 마음산책 제공 ⓒ최충식
말 그대로 이해인 수녀(80)가 사인해주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수녀는 필통에서 어른 주먹만한 도장을 꺼내 ‘쾅’ 찍고, 색연필로 꽃 그려 넣고, 장미 스티커 꺼내 종이를 빈틈없이 꾸민다. 사인 하나에 5분이 걸렸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대신 사꾸(사인 꾸미기)”라는 댓글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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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낸 지 벌써 49년. 신간은 인터뷰와 미공개 대담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말을 시와 함께 엮은 산문집이다. 이 수녀는 “50년 전 책은 민들레 영토, 이번엔 민들레 솜털”이라며 “가끔 거울을 보면 머리가 하얗게 셌다. ‘어머, 내가 존재 자체로 진짜 민들레 솜털이 됐구나’ 그런 묵상을 하게 된다”고 했다.
“민들레 영토 때는 ‘이 땅에서 내가 고독의 진주를 캐며 꽃으로 피어나야 되는데. 좁은 돌 틈에 피어나 민들레처럼 강인하게 살아야 되는데’ 그런 결심을 갖고 글을 썼어요. 그 민들레 한 송이의 수녀가 50년 한 길을 가서, ‘진짜 민들레 영토가 됐구나. 내가 한 송이 민들레로 솜털을 날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음산책 제공
“이감됐으면 교도관한테 물어서라도 답장해요. 가령 공주 감호소에 있다가 다른 곳에 갔다면, 옮긴 지역에 있는 독자한테 ‘크리스마스 때 나 대신 뭐라도 전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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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예쁜 스티커를 보내줘요. 일본 출장 다녀왔다며 보내주기도 하고. 제가 ‘스티커 부자’예요. 온갖 스티커가 다 있어요. 스티커, 색연필, 메모지는 항상 제 가방에 있어서 어딜 가도 들고 다녀요.”
50년 가까이 글을 써 온 ‘민들레 소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
“신앙 안에서 한 길로 오느라 참 애썼다고 하고 싶네요. 마음 변해서 민들레 영토에서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고독의 진주를 키워내고 시에 나오는대로 살아보려 안간힘을 했구나. 고맙다, 축하한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