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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 반도체 분석비 부담 컸는데… 공공 테스트베드 덕 양산 돌파구”

입력 | 2025-12-02 03:00:00

경기 ‘융기원’ 반도체 기술센터
전자현미경 등 테스트베드 구축
제품 성능평가-연구 인력 지원
전문가 “중단없는 운영이 필수”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경기도반도체기술센터’에 상주하고 있는 연구원이 수차 보정 투과전자현미경(TEM)을 통해 민간기업에서 의뢰한 반도체 박막 분석(웨이퍼에 얇은 막을 입히는 공정)을 위해 시료를 장착하고 있다.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제공


“처음엔 외부에 분석을 맡겼죠. 그런데 결과지를 봐도 왜 성능이 안 나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반도체 장비 기업 넥서스비를 운영하는 최학영 대표는 개발 초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D램 제조 핵심 장비인 원자층증착(ALD) 장비 개발 과정에서 공정 문제를 파악하려 했지만 외부 기관이 보내온 분석 결과지 대부분은 ‘원인 없는 데이터’에 가까웠다. 그는 “외부 분석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분석을 또 맡기자니 수억 원이 들고, 자체 분석 장비를 구비하려면 수십억 원이 들어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중소기업에 반도체 분석은 늘 시간과 비용의 벽이었다”고 말했다.

넥서스비가 돌파구를 찾은 곳은 경기 수원시 영통구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융기원) 내 ‘경기도반도체기술센터’(센터)였다. 최 대표는 “센터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도 되는지 확인하는 실증 테스트베드이자 공정 컨설팅 기관”이라며 “박사 연구진과 함께 시험평가서를 검토해 어느 공정이 문제인지까지 진단해줘 양산 단계로 넘어가는 데 결정적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센터의 지원을 거쳐 완성도를 높인 장비는 현재 국내 종합반도체기업 인증을 앞두고 있다.

● 반도체 대·중·소 협력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

융기원은 1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지원을 위해 운영 중인 센터가 도입 4년 만에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김연상 융기원 원장은 “대기업·중소기업·대학·연구기관이 한 공간에서 개발→검증→실증→양산을 연결하는 수직형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융기원은 경기도와 서울대가 설립한 국내 최초의 융합기술 연구기관이다. 경기도는 2021년 융기원을 소부장 특화단지 핵심 기관으로 지정하고, 산업통상부·경기도·융기원이 총 413억 원을 투입해 4000m² 규모의 분석·평가실, 전자현미경실, 클린룸 등 테스트베드를 구축했다. 수차 보정 투과전자현미경(TEM) 등 24대의 첨단 분석장비를 도입했고, 25명의 박사급 인력과 한국인정기구(KOLAS) 국제공인시험기관 인증을 확보해 분석 결과의 국제적 신뢰성과 검증력을 갖췄다. 이런 인프라 덕분에 기업들은 분석부터 공정 검증까지 한 시설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지원’을 받게 됐다. 반도체 트랙 업체인 에스브이에스(SVS) 송경섭 연구소장은 “반도체 8대 공정 장비와 분석 장비를 한 라인에서 통합 검증할 수 있어 성능 평가와 신뢰성 확보가 체계적이었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센터 운영으로 중소기업 기술 완성도, 공정 실증, 지역 R&D 활성화 등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타났다고 본다. 최근 3년간 성과는 △장비 가동률 83.9% △시험·분석 지원 9231건 △전문가 기술 지원 252건 △장비 활용 기업 매출 기여 715억 원 △신규 고용 218명이다. 변창우 융기원 반도체분석개발팀장은 “공공이 구축한 기반시설이 기업 성장을 뒷받침하고, 그 성장이 다시 매출과 고용으로 확산하는 선순환 구조가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 안정적 운영이 기술 성장의 전제 조건

경기도는 센터 지속 운영을 중소기업 성장의 핵심 조건으로 보고 내년에도 예산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박민경 경기도 반도체산업과장은 “지난 4년은 기반 조성 단계였고, 앞으로는 기업 성과와 일자리 확대로 이어지도록 시스템을 안정화해야 한다”며 “새 예산보다 지속 운영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운영 공백이 생기면 피해는 기업에 그대로 전가된다. 시험 환경이 흔들리면 KOLAS 인증 유지가 어려워지고, 자격이 박탈되면 기업은 해외 인증기관을 이용해야 해 비용이 수십억 원까지 치솟는다. 반도체 분석장비도 장시간 멈추면 진공계·펌프·냉각수 라인 등이 손상돼 재설치·재교정 비용이 초기 투자비의 최대 30%까지 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실증 인프라는 ‘중단 없는 운영’이 절대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김형근 한국전자기술연구원 박사는 “데이터·기술·인재·기업 성과는 센터가 계속 가동될 때 복리처럼 축적되지만 멈추는 순간 하루 만에 효력을 잃는다”며 “미국 일본 유럽이 모두 공공 주도로 실증 인프라를 운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원=이경진 기자 lk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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