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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와 포퓰리스트, ‘아르헨 국모’ 에바의 빛과 그림자

입력 | 2025-12-01 13:46:00


아르헨티나의 성녀일까, 혹은 포퓰리즘의 상징일까.

지난 달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에비타’는 사실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이들은 별로 없다.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자 배우, 정치인이기도 했던 에바 페론(1919~1952)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에비타’는 에바의 애칭으로 ‘귀여운 에바’라는 뜻이다.

‘국민의 어머니’라 불리며 숭배에 가까운 사랑을 받았던 에바. 26세 나이에 영부인이 된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었던 지도자이자, 대중의 감정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이용한 정치적 전략가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는다. 하지만 뮤지컬 ‘에비타’는 그를 영웅이나 악인과 같이 단선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다층적인 면을 보여주며 드라마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에비타’는 ‘캣츠’, ‘오페라의 유령’ 등을 만든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1978년 웨스트엔드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 미국 토니상 7관왕을 수상하는 등 반응이 뜨거웠고,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무대에 올려져 왔다.

한국에선 2006년 초연, 2011년 재연 이후 14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 공연은 올 7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개막한 리바이벌(Revival·과거의 공연을 새롭게 만듦) 버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여성으로서의 삶에 좀더 초점을 맞췄다.

에바는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배우를 꿈꾸며 수도로 올라온 뒤 라디오 스타, 배우 등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나중에 대통령이 된 후안 페론과 결혼했고, 남편 못지 않은 권력을 휘둘렀다. 사회적 지위 상승의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남성들을 발판으로 삼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당시 사회에서 여성에게 허락된 선택지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물이 보다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에바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바로 해설자 ‘체(Che)’다. ‘영원한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캐릭터는 ‘민중의 시선’을 상징한다. 에바의 행보를 냉소와 의문, 때로는 공감을 섞어 바라보며 이야기를 리드미컬하게 이끈다.

뭣보다 음악은 ‘에비타’의 가장 큰 힘이다. 국민 앞에서 부르는 ‘돈트 크라이 포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는 뮤지컬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친숙한 곡. 감정을 끌어 올리는 드라마틱한 멜로디와 서사가 결합해 강렬한 무대를 만든다. 성공을 향한 소녀의 야망을 그린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어 뉴 아르헨티나(A New Argentina)’ 등 33곡이 대사 없이 이어지는 ‘성 스루(sung-through)’ 형식이지만 전혀 단조롭지 않다.

무대는 화려한 장치 대신 배우와 조명의 움직임에 집중해 간결하게 연출했다. 앙상블의 힘 있는 군무 역시 무대의 재미를 더한다. 파워풀한 보컬이 필수인 에바 페론 역은 김소현, 김소향, 유리아가 맡았다.

14년 만에 돌아온 ‘에비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나아가 “지도자는 왜 필요한가” 같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객석에 앉은 관객은 각자의 자리에서 에바를 바라보며 어떤 자신만의 답을 찾게 될까.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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