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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책의 두 얼굴… 히틀러에게 책은 ‘전쟁 무기’였다

입력 | 2025-11-22 01:40:00

전쟁서 책은 적극적 행위자로 기능
지도자 등 어록 출판해 애국심 고취
◇전쟁과 책/앤드루 페테그리 지음·배동근 옮김/704쪽·4만5000원·아르떼




1933년 5월 10일, 독일 베를린 아우구스트 베벨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군중이 책들을 불태웠다.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비(非)독일인의 영혼을 정화시킨다”며 선동해 일어난 ‘베를린 분서 사건’이다.

전쟁과 책의 상관관계를 떠올리자면 대개 이와 비슷한 장면을 생각할 것이다. 전쟁은 늘 악역이며 책은 희생자인 그림. 그러나 영국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저자는 전시에 쓰이고 읽힌 책들을 추적하며, 사회의 여러 층위에서 책이 ‘전쟁의 적극적 행위자’로 기능해온 역사를 보여준다.

책은 우선 군사적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0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노르웨이 해안을 점령한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작전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한 참고 자료로 채택한 건 오래된 스칸디나비아 관광 안내서였다. 다른 국가의 지리 정보가 많지 않던 시대에 책이 전황을 뒤집는 전략적 자원이 됐던 셈이다.

특히 전쟁 양상이 정보전으로 진화한 20세기, 도서관은 전쟁의 주요 거점이 됐다. 당시 군 고위층에게는 도서관이 소장한 과학 정기간행물이 매우 중요했다. 과학계가 공유하던 지식을 확보하는 게 전쟁의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1920년대 영국학술원은 세계 각지의 도서관 150곳과 그 안에 있는 간행물 2만5000종의 목록을 모았다. 독일 도서관들은 전국 상호대차 서비스를 마련해 각 간행물을 연구기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책은 후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이나 ‘빨간 책’으로 불리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어록처럼 지도자들은 애국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책을 활용했다. 당시 종이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음에도 출판업이 황금기를 누린 이유다. 산문으로 표현하기에는 위험한 감정을 ‘시’가 대체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뒤 한 달 동안 독일에서만 무력을 예찬하는 시가 5만여 편이나 쓰였다고 한다.

“책이 본질적으로 평화로운 것이라는 가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처럼 책에 대한 낭만을 걷어내는 책이다. 두께가 상당하지만 평이한 문체 덕에 읽기 어렵지 않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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