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여성 화가가 재구성한 영웅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히는 젠틸레스키 부녀는 모두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사뭇 다른 느낌을 전했다. 레오나에르트 브라머르가 그린 아르테미시아의 초상(1620년). 사진 출처 김영민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창 그림을 배우던 아르테미시아는 어느 날 아버지 친구였던 유부남 화가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겁탈당한다. 타시는 이혼하고 아르테미시아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으나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아버지 오라치오는 그를 강간죄로 고소했고, 고통스러운 재판 끝에 타시의 유죄가 선고됐다. 남자와의 악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랑에 빠져 피에트로 스테아테시와 결혼했으나, 남편은 부인이 자기보다 더 뛰어나다는 자격지심을 못 이겨 아르테미시아를 폭행하는 지경에 이른다.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에 추악한 남자들로부터 고통받는 여성이나 악한 남성을 처단하는 여성, 자기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는 여성이 생생하게 등장하는 것은 이 같은 인생 경험과 무관치 않다. 적국 아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어 조국을 구하는 구약성서의 여성 영웅 유디트, 아름다운 여성 수산나가 목욕하는 것을 엿보는 두 늙은이를 그린 ‘수산나와 두 노인들’, 능욕을 당하자 자결한 루크레티아, 끌려가기 싫어 자살한 클레오파트라 등등. 물론 이러한 인물들은 여러 화가가 즐겨 그린 공통 소재였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에는 다른 화가의 같은 그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정념, 여주인공과의 동일시, 그리고 악한 남성에 대한 증오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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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히는 젠틸레스키 부녀는 모두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사뭇 다른 느낌을 전했다. 딸 아르테미시아의 ‘다윗과 골리앗’(1639년).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히는 젠틸레스키 부녀는 모두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사뭇 다른 느낌을 전했다. 아버지 오라치오의 ‘골리앗의 머리를 바라보는 다윗’(1610년).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승리자와 묵상하는 자의 차이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이 체격의 차이다. 얼핏 생각하면 승리자의 육체가 묵상하는 자의 육체보다 더 강인하게 그려졌을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둘 다 미소년을 그렸지만, 오라치오의 다윗은 다부진 반면에 아르테미시아의 다윗은 호리호리하다. 전자는 아무래도 남성으로 보이지만, 후자는 너무 고와서 마치 여성처럼 여겨질 정도다.
여성적인 다윗이라니, 이것은 혹시 아르테미시아 본인의 모습은 아닐까. 그녀를 괴롭혔던 악한 남자들과 대결해서 마침내 승리하는 자신의 모습을 성서 속 인물 다윗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무리한 해석이라고? 동시대 화가 레오나에르트 브라머르가 그린 아르테미시아의 초상을 보라. 흥미롭게도 아르테미시아는 콧수염을 붙인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뿐 아니라 당시 바로크 시대에서 귀족이나 전사 계층이 즐겨 썼던 깃털 달린 모자, 바로크 회화에서 다름 아닌 다윗이 쓰는 바로 그 모자를 쓰고 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는 여성 다윗 혹은 성을 초월한 다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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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