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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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있으면 처신에 더욱 신경 쓰게 된다. 혼자라면 초록불이 깜빡일 때 후다닥 뛰어 건널 텐데 아이와 함께라면 “깜빡일 땐 기다려야 해”라고 말하고 멈춰 서고, 함께 게임을 할 때도 “꼼수는 안 된다”며 한결 더 정직하게 임한다. 남이 보든 안 보든 몸가짐도 더욱 바르게 하게 됐다. 언제 어디서든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성적이나 성취를 떠나, 아이가 바르고 올곧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그런 부모의 입장에서 근래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유수 대학에서 잇따라 드러난 인공지능(AI) 커닝 사태였다. 도구와 수법이 무엇이었는지를 떠나, 많은 학생이 그토록 쉽게 양심의 문턱을 넘었다는 사실이 큰 충격을 안겼다.
서울대 정문 전경. 연세대, 고려대에 이어 서울대에서도 AI 부정행위가 적발돼 충격을 줬다. 뉴스1
● 명문대에서 잇따라 드러난 ‘AI 커닝’
지난 9일 연세대는 지난달 말 신촌캠퍼스 3학년 대상 교양 수업 중간고사에서 40명 넘는 학생들이 부정행위를 벌인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온라인 시험에서 최소 40여 명의 학생들이 시험 문제를 캡처해 유출하거나, 촬영 화면을 고의로 가리고 챗GPT 같은 생성형 AI 프로그램으로 답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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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서울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다. 역시 지난달 치러진 서울대 교양과목 중간고사에서 다수의 학생이 AI를 이용해 문제 풀이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른바 ‘SKY’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 세 곳에서 모두 부정행위가 확인된 것이다.
가장 우수한 인재가 모인다는 학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도 실망스럽지만, 더 우려스러운 건 이 세 건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취재에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다른 수업에서도 있었던 일”이라고 답하거나, “이미 흔하다,” 심지어 “이번에 걸린 곳들은 재수가 없어 걸린 것 같다”고 답했다고 한다.
커닝 페이퍼를 돌리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제공
● “나만 안 쓰면 손해”…‘유능한 도구’ 사용에 큰 죄책감 느끼지 않아
입시와 취업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집단 부정행위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2012년 서울대 경영대학에서는 경제원론 시험 문제가 외부에 유출된 사실이 드러나 강사가 직위해제되고, 학교가 전체 성적을 다시 산정하는 일이 있었다. 2015년 전북대 의대에서는 학생들이 시험 문제를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일부 정답을 돌려본 의혹이 확인돼 7명이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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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특히 눈길을 끈 건 비대면 수업과 온라인 시험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AI라는 ‘유능한 도구’가 결합하는 순간, 학생들의 윤리적 기준이 더욱 쉽게 무뎌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은 이에 대해 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기사들을 보면 “나만 (AI 사용) 안 하면 손해”라는 식으로 답한 학생들도 많았다고 한다.
지난해 논술 시험 문제 유출 논란이 벌어졌을 때 연세대 교정의 모습. 뉴시스
● ‘어떻게 선하게 쓸 것인가’ 교육과 합의 필요해
사실 ‘AI라는 새롭고 유능한 도구를 어떻게 선하게 쓸 것인가’ 하는 윤리적 고민은 국제적으로도 화두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AI를 기존 컴퓨터나 검색 툴 같은 단순 ‘도구’로 인식해 시험·보고서에 활용하는 것을 큰 부정행위로 여기지 않는 인식들이 확인된다. 실제 해외 유명 대학에서도 AI를 활용한 집단 부정 사례들이 다수 적발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긴 하다. 보고서 주제 선정과 기본 구조는 내가 잡았지만 초안만 AI에게 쓰게 한 뒤 문장을 다듬어 제출한 경우는 부정일까 아닐까. 시험 전에 “수업 자료를 모두 분석해서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를 정리해 달라”고 AI에게 요청해 그 요약본만 보고 공부했다면 이는 편법일까. 시험 중 AI에 정답을 직접 묻지 않고 단순 개념 설명이나 접근 방법만 확인했다면 이것도 부정행위로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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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를 ‘학습을 돕는 도구’로 보고, 어디부터를 ‘정직을 훼손하는 행위’로 볼 것인지 사회적 합의를 쌓아야 한다. 동시에 AI 기술 사용법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감각을 아이들 마음속에 심어 주는 교육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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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 위해서라면 편법과 꼼수 눈감는 사회 분위기도 성찰해야
더불어 이 문제는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돌아봐야 한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이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의 결과주의,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순진한 사람’ 취급을 받는 사회 분위기가 청년들에게 ‘성공을 위해 어느 정도 편법은 괜찮다’는 메시지를 줘 온 게 사실이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 과정의 꼼수쯤은 눈감아 주는 문화가 계속된다면, 아무리 AI 윤리교육을 강화해도 말로만 남을 것이다.
AI 시대가 새로운 역량을 요구하는 시대라지만, 그 바탕에는 오히려 가장 오래된 덕목인 정직과 신뢰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정직하게 쌓은 과정이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을 갖는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일 것이다.
AI 커닝 사태를 계기로 많은 대학이 시험 관리와 감독 강화 방안을 내놓고 있다. 기술적·행정적 조치와 함께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놓고 살아왔는지 성찰하는 논의가 병행하길 바란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