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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황규인]1000만 관중 열기 타고 또 낙하산 KBO총재 내리나

입력 | 2025-11-14 23:12:00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국회의사당 화장실을 찾았을 때 일이다. 클레멘트 애틀리 당시 영국 노동당수 바로 옆 소변기가 비어 있었지만 처칠 총리는 굳이 뒤에 줄을 섰다. 애틀리 당수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자 처칠 총리는 웃으며 말했다. “그 당은 크고 탐나는 것만 보면 무엇이든 국유화하자고 하니 옆에서 일을 보기가 무섭지 않겠습니까.”

한국 스포츠에도 정치권이 ‘국유화’하지 못해 안달인 자리가 적지 않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대표적이다. 군사정권 시절 취임한 서종철 초대 총재는 훗날 대통령이 되는 전두환 대령을 부관으로 두고 있던 육군참모총장 출신이었다. 그 뒤로 김기춘, 홍재형, 정대철, 신상우, 정운찬 등 여당 정치인이 ‘낙하산’을 타고 KBO 총재 자리에 내려앉았다. 야구와 별 인연이 없었던 이들은 역시 야구와 별 관계 없는 이유로 KBO 총재 자리를 내놓곤 했다.

반면 허구연 현 총재는 두말할 필요 없는 야구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시기 연이은 스캔들로 골머리를 앓던 프로야구 10개 구단이 ‘구원 투수’로 낙점한 인물이 바로 허 총재였다. TV 해설위원 시절 “프로야구는 팬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던 허 총재는 때로는 사업가처럼, 때로는 외교관처럼 뛰고 또 뛰었다. 그 결과 프로야구는 2년 연속으로 1000만 관중을 돌파한 ‘크고 탐나는’ 리그가 됐다. 팬들도 ‘허 총재 취임 이후 야구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겼다’며 ‘행복한 불만’을 늘어놓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허 총재가 ‘너무 튄다’는 지적이 들렸다는 것.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은 허 총재가 △커피 프랜차이즈 선불카드를 2310만 원어치 사는 등 법인카드를 마음대로 사용했으며 △1박에 140만 원이 넘는 호텔에 머무는 등 해외 출장비도 과도하게 썼다고 국정감사 때 문제를 제기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이에 대해 사무 검사에 들어갔다.

11개월 동안 2310만 원, 한 달에 210만 원, 하루에 7만 원, 그러니까 5000원짜리 커피 14잔 값을 결제한 것이나,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챔피언결정전 ‘슈퍼볼’이 열려 하루 숙박료가 2000달러(약 292만 원)까지 치솟았다는 보도가 잇따랐던, 미국 애리조나주 호텔에서 하룻밤에 140만 원을 쓰면서 스프링캠프 현장을 찾은 게 정말 문제였는지는 문체부 검사를 통해 드러날 일이다.

다만 ‘여권에서 특정 인물을 KBO 차기 총재로 밀고 있다’는 소문이 야구계에 퍼지던 시점에 이런 지적이 나왔다는 사실은 공교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도 이제 눈치가 좀 생겼는지 정치인이 아니라 호남 출신 야구인을 밀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허 총재는 경남 진주 출신이다.

그 야구인이 정말 KBO 총재가 하고 싶다면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허 총재를 흔드느라 정치권에 줄을 댈 게 아니라, 줄을 서서 때를 기다리며 역량을 기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야구는 원래 자기 차례가 아닐 때 타석에 들어서면 홈런을 쳐도 아웃으로 처리하는 종목 아닌가. (노파심에 덧붙이면 이 글은 허 총재에게 커피 한 잔 얻어먹지 않고 썼다.)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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