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 유물/정잉 지음·김지민 옮김/484쪽·3만2000원·글항아리 청나라 4대 황제 ‘건륭제’ 유물 47점 전용 상자에 보관… 종종 꺼내보며 예술성 만끽 송나라 어용 자기 등 대만 국보 36점 소개
예술 애호가로 유명한 황제 건륭제가 자주 꺼내 보았다는 귀중한 물건 상자인 ‘집경조’ 다보격 목갑. 글항아리 제공
“자단운룡문다보격방합(紫檀雲龍紋多寶格方盒)을 꺼내 오라.”
길고 긴 이름의 이 물건은 건륭제가 좋아했던 유물 47점을 각기 다른 모양의 함과 서랍에 보관하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보물 상자’다. 작은 옥 조각부터 색색의 도자 잔은 물론이고 유물들을 설명하는 책까지 딸려 있었다. 이 보물 상자를 소장한 대만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은 이 밖에도 거장의 산수화와 글씨, 공예품 등 중국 황실의 방대한 유물을 갖고 있으니 ‘훨씬 거대한 자단운룡문다보격방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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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때 단 20년 동안만 오로지 황실을 위한 도자기를 제작했던 여요에서 만든 수선화 받침. 글항아리 제공
독자가 각 유물을 더 잘 상상할 수 있도록 적절한 예시도 든다. 건륭제를 비롯한 황제의 ‘보물 상자’를 설명할 때는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하는 ‘언박싱(unboxing)’에 비유한다. 황실의 초상화를 묘사할 때는 ‘인증샷’도 언급한다. 송나라 때 유행했던 검은 찻잔인 ‘건요(建窯)’의 신비로운 어두운 색은 영국 예술가 데릭 저먼의 책 ‘크로마(Chroma·1994년)’의 대사를 인용했다. “검은색은 절망인가? 폭풍우의 먹구름도 모두 은테를 두르고 있지 않은가? 암흑 속에는 희망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소동파의 서예 작품 ‘한식첩(寒食帖)’은 건륭제의 수중에 들어갔다가 일본 수장가에게 넘어갔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라졌다가 기적처럼 타이베이 박물관에 다시 등장했다는 소장 스토리도 소개했다. 이런 사연은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사랑받았지만, 정쟁에 휘말려 끊임없는 유랑을 했던 소동파의 삶과 겹쳐진다고 전했다.
유물의 모양과 제작 과정, 감상기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건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박물관은 청나라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3대가 수장한 유물이 중심이다. 세 황제가 문화의 전성기를 이끈 과정도 흥미롭다. 대범한 강희제, 문인의 노선을 밟은 옹정제, 이를 계승해 뛰어난 ‘궁정 예술 총감독’이 된 건륭제의 모습이 유물과 함께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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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고궁박물관의 인기 유물 중 하나인 ‘산호괴성점두분경’. 글항아리 제공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