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당초 13일 발표 예정이었던 10월 물가 지표는 산정을 위한 조사가 중단된 상태다. 10월 물가가 아예 공백으로 남겨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관세로 인한 경제 영향이 서서히 드러나고, 노동 시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큰 가운데 미국 경제가 ‘깜깜이 주행’을 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 역대 최장 셧다운의 파장
5일 CNN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우고 있는 이번 셧다운이 어떤 셧다운보다 경제적 충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트럼프 1기 때 벌어졌던 2018~2019년 셧다운은 당시 최장 기록(35일)이었지만 정부 지출의 10%만 중단된 ‘부분 셧다운’이었다. 반면 이번 셧다운은 전체 예산 집행의 100%가 멈춘 상태다.광고 로드중
셧다운의 여파로 월간 고용보고서는 9월 5일 공개된 8월치가 마지막이었다. 9, 10월 지표의 발간이 무기한 미뤄지고 있다. 9월 물가 지표는 정부가 내년 사회보장연금 지급액을 조정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키기 위해 노동통계국 직원들을 한시적으로 복귀시켜 산정했다. 그래서 9월 CPI 지표가 지난달 24일 발표 이후에는 정부가 다시 문을 열 때까지 경제 데이터 암흑기가 이어질 예정이다.
● 3% 물가, 경제 심리 ‘최악’
미국의 9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3% 올랐다. 월가 예측치(3.1%)보다는 낮았으나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2% 목표보다는 여전히 높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 뒤 일부 경제학자들이 예상한 물가 급등은 없었지만, 물가 상승률은 ‘트럼프 관세’ 부과가 시작된 4월 2.3%에서 매달 조금씩 올라 9월 3%를 찍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물가가 오르는데 중산층과 노동계층의 임금 상승이 둔화하여 많은 가계가 청구서 지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자료에 따르면 올 9월 저소득 가계의 임금 상승률은 1.4%로 떨어져 3%의 인플레이션을 한참 밑돌았다.
반면 가스와 전기 비용은 큰 폭으로 상승했고, 식료품비도 전체 인플레이션보다 약간 더 빠르게 올랐다. 커피 가격은 지난 1년 동안 18.9% 급등했고 쇠고기 가격은 14.7%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가 소매품의 가격이 고가품보다 빠르게 오르는 현상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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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대가 7일 발표한 11월 소비자심리지수 잠정치는 50.3으로 한 달 전보다 3.3%포인트 떨어졌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정점을 찍었던 2022년 6월 이후 3년 5개월 만에 최악의 수치다. 조앤 쉬 미시간대 조사 책임자는 “가계는 여러 방향에서 재정적 압박을 느끼고 있다”며 “앞으로 노동시장이 추가로 둔화되고 자신에게도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깜깜이 주행하는 美경제
물가 상승과 고용 둔화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민간 데이터가 연방정부의 공식 통계를 대체하기는 한계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PIIE는 지난달 30일 보고서에서 “민간 데이터는 유용하지만, 공식 통계를 대체할 수는 없다”며 “공식 통계의 폭넓은 대표성, 일관성, 투명성, 공적 책임감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고 짚었다. 고용보고서의 경우 민간 기업들이 급여 데이터나 구인 공고를 통해 ‘누가 일하는지’는 추정할 수 있으나 실업률 측정에 필요한 ‘일하지 않는 사람’의 규모는 파악하기 힘들다. 물가 역시 충분히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민간 데이터가 없다. 미국 노동부(BLS)는 수백 명의 조사원을 통해 식료품과 주거비, 교통비, 서비스비 등 생활비 전반을 직접 조사해 매달 소비자물가를 발표했다. 소매품의 가격이나 임대료를 측정하는 민간 업체들이 있으나, 서비스 부문은 이조차도 마땅치 않다.
데이터 공백은 연준의 다음달 추가 금리 인하 여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30일 기준금리를 1.75~2.00%에서 1.50~1.75%로 0.25%포인트 인하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데이터 공백 때문에 정책 결정을 늦을 가능성이 있다는 신중론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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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의장의 발언이 금리 인상 중단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는 가운데,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도 일관된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지난달 31일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안개가 낀다고 해서 길가에 멈춰 서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속도를 줄일 순 있지만 멈추면 안 된다”며 12월에도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