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내 카페에서 만난 만난 사가와 아키 시인.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30년간 한국 시 일본에 전파한 ‘문학 가교’ - 사가와 아키 시인
“한국의 영화나 문학 등에 사회 문제나 역사 문제 등을 적극 담아 대단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일본의 대표적 사회파 시인 사가와 아키 씨(佐川亜紀·71)는 한국 문학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서울에서 열린 ‘서울, 세계 시 엑스포’ 참석차 방한한 그는 지난달 31일 한일 양국의 문학과 사회에 대한 견해를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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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와 시인과 한국과의 인연은 구금 중이던 고(故) 김지하 시인 구명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던 1970년대 중반과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대학생 때 아사히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모리 쿄조(森恭三) 기자가 1970년대 후반 김지하 시인의 구명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며 한국 민주화 운동과 문학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이후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과 한국의 식민지 경험과 이후의 현대사까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이해했고, 이는 곧 내 시 세계의 출발점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한일 관계에 대해 “청년층 교류는 K팝과 한류로 활발해졌지만, 역사적인 위안부 문제나 징용공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문화 교류와 역사 인식 사이의 괴리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청년층 교류가 활발하다는 것과 정치에서의 변화는 다르다. 역사 문제,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지 않는 점은 여전히 우려된다”고도 했다.
사가와 시인은 현재 일본의 정치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최근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高市早苗)는 우익 성향이 강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安倍晋三)의 되풀이라고 여겨지고 있고, 사회 전체가 후퇴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젊은 사람들까지도 지지하는데, 이는 일본 경제가 나빠졌고 젊은층이 빈곤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 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 나쁜 경제 상황을 외국인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 차이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에서는 1995년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반면, 일본에서는 식민지배 사과 표현을 희석시킨 2015년 아베 담화가 더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일본 사회의 역사 인식이 점점 후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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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와 시인은 문학의 역할이 단순한 언어 예술을 넘어선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언어가 기호화되고 번호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시는 각 언어 고유의 생명력과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게 해준다”며 “한 시대의 유행이나 트렌드를 넘어서 더 깊은 차원에서 인간과 세계, 서로 다른 문화가 교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시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사가와 시인은 한일 관계 외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인권 문제와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종전 목소리도 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일 양국 독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일본 독자들에게는, 한국에는 사회를 그리는 시가 있다. 한국 시를 많은 일본 독자들이 읽어주기를 바란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일본 여성 시인들에게도 주목해주기를 바란다. 서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일본의 젊은 여성 시인으로 나카하라 주야상을 수상한 아오야기 나츠미 등을 추천했다. 그는 최근 한국 시 중 나희덕, 안희연 시인의 시를 좋게 읽었다고 한다.
사가와 아키 시인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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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한국시인협회가 출판한 앤솔러지 ‘지구는 아름답다’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의 오세영, 고 김남조, 고 김광림 등 한국 시인 114명, 일본 시인 268명, 총 382명 시인 시를 담은 ‘한일환경시선집 지구는 아름답다’(권택명 시인과 공역)를 2010년에 발간했다.
지난해 ‘한국·5월 광주항쟁의 저항시’를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와 공역으로 한일에서 출판해 김준태 시인 등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일본 월간 문예지 시와사상을 통해 한국의 젊은 시인으로 김현, 박소란, 안희연, 백은선, 황인찬 시인 등의 시를 소개한 바 있다. 최근에도 한성례 시인(번역가)과 함께 한국과 일본 시인간 문화교류를 활발히 추진해가고 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