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특별기획 ‘인구 절벽을 넘어선 도시들’ 시리즈에서 주목한 지역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갖고 있던 전통과 산업, 인프라, 그리고 시민의 정신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스위스 루가노는 금융 비밀주의의 몰락 이후 ‘비밀금고’ 대신 ‘가상자산’을 선택했고, 핀란드 오울루는 ‘노키아의 도시’라는 꼬리표를 떼고 통신 연구개발(R&D) 역량을 기반으로 스타트업 도시로 거듭났다. 호주 질롱은 자동차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 인공지능(AI)과 방위산업, 배터리 기업을 세워 ‘호주의 러스트벨트’에서 ‘호주의 실리콘밸리’로 변신했다. 스웨덴 말뫼는 조선업 몰락의 상처를 딛고 재생에너지와 녹색교통 도시로 부활했고, 이탈리아 무소멜리는 ‘1유로 주택’으로 낙후된 마을을 재생시켜 외부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결국 이들 도시는 ‘남들이 한 모델’을 그대로 베낀 게 아니라, 자신들의 자산을 재발견하고 지역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데서 답을 찾았다. 세금을 코인으로 내는 도시도, 조선소 대신 친환경 버스를 달리게 한 도시도, 빈집을 예술가의 작업실로 바꾼 마을도 모두 ‘자기 방식의 생존법’을 택했다는 점에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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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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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방소멸, 숫자가 아닌 지역 특성 봐야…중앙 정부 광역시도 역할 커”
“지방소멸, 숫자가 아닌 지역 특성 봐야…중앙 정부 광역시도 역할 커”
본보 기획을 마무리하며, 지방 소멸 문제에 대한 국내에서 향후 과제를 묻기 위해 이 분야 전문가인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에 연락했다. 이 연구위원은 30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소멸 문제는 지자체보다 중앙정부에 더 큰 책임이 있다”며 “부처별로 단절된 제도 때문에 정작 위기에 처한 지역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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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지방소멸위험지수를 처음 개발한 이 연구위원은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한국지역고용학회와 공동으로 발행한 계간지 ‘지역산업과 고용’ 가을호(통권 17호)에서 개편된 지수를 발표했다. 그는 “기존 지수로는 부산 같은 광역시와 인구 5만도 안 되는 군위군이 같은 소멸위험지역으로 묶였다”며 “지역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각 지역마다 쇠퇴 원인이 다양하고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수치에만 매몰되지 말고 지역 특성에 따른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책을 펼칠 때는 인구 고령화 정도, 산업 비중, 제조업 비중 등등 같이 보면서 대응해야 한다는 것. 다층적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고용정보원 제공
다음은 일문일답.
―보고서엔 단순히 중앙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을 넘어, 지역의 특성과 상황에 맞춰 공동체를 유지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담겼다.
“지금 인구감소지역 정책을 보면 대부분 청년 인구 유입이나 새로운 산업 유치, 문화관광 일자리 만들기에 집중한다. 그것보다는 내부 구성원들을 위한 필수 서비스가 중요하다. 의성군 이웃사촌마을은 LH 주택과 민간 기업 컨소시엄으로 주거 지원과 일자리를 동시에 제공해 청년 인구를 유입했다. 문경도 청년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비슷한 접근을 하고 있다. 양양은 설악산, 서핑 같은 문화관광 자원이 좋으니 관광 산업으로 갈 수 있고, 영양군은 농촌 기본소득 개념을 도입해서 원자력 발전 같은 환경 시설이 들어올 때 그걸 연계한 소득 지원을 고민하고 있더라. 지역마다 조건에 따라 다양한 대응이 가능하다.”
―현재 연간 1조 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집행하고 있다. 이 기금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굉장히 중요한 정책이다. 예산도 크고 지역 인구 문제에 이만큼 집중한 적이 많지 않다. 그런데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지역을 기초지자체 단위로만 본다. 소멸위험에 처한 게 그 지자체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공간 구조가 바뀌고 산업이 바뀌어서 그런 건데, 개별 지자체가 열심히 하면 되는 것처럼 접근한다. 인구라는 파이가 정해진 제로섬인데 모든 기초지자체가 경쟁하는 구조다. 지역을 주변 지역과의 관계 속에서 봐야 한다.
또 사업 방식이 유행을 따라 극단적으로 바뀐다는 점도 문제다. 초기엔 인프라 시설 중심이었다가 1, 2년 지나니 생활인구 확대로, 최근엔 일자리 문제로 계속 쏠린다. 사실은 그 지역의 주거나 일자리 관련 인프라, 역량 있는 사람들을 키우는 것, 문화관광 자원 혁신, 이런 게 다 맞물려야 하는데 한쪽으로만 간다.
마지막으로 너무 단기 프로그램 중심이다. 인구가 나가는 게 수십 년간 누적된 결과인데, 전부 3년짜리 계획으로 하고 사실상 1년 사업 해보고 갱신하면서 1년 단위로 계속 바꾼다. 전략적인 지역 발전 구상이 안 되는 거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를 개선해야 하나?
“기초지자체로 돈이 몰리다 보니 조정이 안 되고 정책은 비슷해진다. 예컨대 통영과 사천이 케이블카로 관광객 유치 경쟁을 한다. 지금은 기초지자체에 75%, 광역에 25%를 배분하는데, 광역 비율을 높여야 한다. 1조 원 중 5000억 원 정도는 광역 시도에 주고 기초지자체 기능 조정에 활용해야 한다. 어디는 교육에 특화한다든지 문화에 특화한다든지, 이런 걸 광역 단위 전체 발전 구상 속에서 함께 논의해서 만들어야 한다. 사업 설계도 광역시도 전략 하에서 협약해 공동 제출하는 형태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개별 지자체가 컨설팅 업체에 맡겨 사업계획서를 만든다. 사업계획서가 그럴듯하면 예산이 더 나오니까 민간 컨설팅 업체에 돈을 굉장히 많이 준다고 한다. 심사하는 분들이 각 분야 전문성은 높으시겠지만, 오랜 기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대략적으로 그럴듯하고 시각적으로 좋으면 선정되는 방식은 맞지 않다.”
―지원이 한 분야에만 몰리는 점이 문제인가?
“생활인구를 늘리는 정책의 70~80%는 기존에 살던 사람들한테 필요한 일자리를 만들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게 중심축이어야 한다. 그게 본질인데, 그건 빼놓고 외부 관광인구 유입에만 집중하는 게 문제다. 대표적으로 지금 인구감소지역에서 하는 정책을 보면, 농어촌 지역에 청년 인구 유입하겠다고 혹은 관광 인구 늘리겠다고 데크나 구름다리는 열심히 만든다. 정작 지역에 있는 취약계층이나 노인들한테는 그 인프라 예산 가지고 더 양질의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지역 주민의 생활 만족도가 높아지면 청년이든 귀농귀촌이든 자연스럽게 늘어날 텐데 말이다. 생활인구를 하면서 제일 많이 하는 사업이 축제다. 축제하면 관광객이 많이 오니까 우리 지역에 관광객 몇백만 명 왔다고 생활인구가 늘었다며 홍보한다. 모든 지역이 똑같이 축제를 한다. 공무원들은 중앙정부 예산을 따오고 새로운 창의적인 아이템에만 몰두하니까 눈에 가시적으로 보이는 사업에 치중한다.”
―‘하드 인프라와 소프트 인프라의 균형’을 강조했는데, 현장에서 어떤 문제를 봤나.
“건물은 만들어놓고 운영 프로그램은 없는 경우가 많다. 특정 지역에 임산부들이 쉴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놓고 정작 가보면 운영할 교강사가 없고 건물은 빈 채로 돌아간다. 왜 이런 일이 생기냐면, 지금은 개별 지자체가 컨설팅 업체에 맡겨 사업계획서를 만드는데, 사업계획서가 그럴듯하면 예산이 더 나오니까 민간 컨설팅 업체에 돈을 굉장히 많이 준다고 한다. 심사하는 분들이 각 분야 전문성은 높으시겠지만, 오랜 기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대략적으로 그럴듯하고 시각적으로 좋으면 선정되는 방식이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 그런 프로그램, 그 안에 들어갈 사람들, 우리가 중간조직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들과 연계해서 통합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대도시 원도심에 소프트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담겼다.
“부산 영도구 같은 소멸위험지역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할 때, 마을 환경 개선이나 재생 센터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청년들이 모여서 창업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식이다. 요즘 라이즈 사업이라고 지역 대학 혁신 사업도 있는데, 부산 같은 데서 청년 특구를 만들어 대학 원격 수업이나 워케이션 같은 프로그램을 집적시키면서 유연하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중앙정부 차원 대응은 어떤가?
“우리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제도들이 부처별로 너무 단절돼 있고 경직적이다. 산업 성장 시대의 지원 체계라서 지금과 안 맞는다. 우리나라는 지방소멸 문제를 비수도권 균형발전 문제와 함께 봐야 한다. 산업 쇠퇴가 개별 도시 수준의 문제가 아니고,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비수도권 중심으로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외국 사례도 교훈이 되지만 우리나라는 속도와 사이즈가 훨씬 더 크다. 일본만 하더라도 우리처럼 수도권 집중도가 높지는 않다. 자꾸 지자체 탓을 하는데, 중앙정부가 지역 쇠퇴를 막는 제대로 된 제도를 갖춰야 한다. 강원도 석탄 폐광 지역, 올해도 여수 등 공장 폐쇄 지역을 갔다. 태백시에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실직자가 생겨도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산업지원은 해당 부처 기준에 안 맞고, 일자리 지원은 고용부 지원 체계 기준에 안 맞는 식이다.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