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계단 1㎡에 4.8명… 여전한 ‘과밀사회’ 주요 지하철역 밀집도 위험 수위 이태원 참사 3주기 달라진게 없어
27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 퇴근하려는 직장인 등 승객들로 역사 승강장(위쪽 사진)과 강남역 내 계단이 붐비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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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면적에 최대 4.8명. 출퇴근 시간대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승강장 계단에 몰린 인파다. 현행 지침에 따르면 계단은 경사가 있어 1㎡당 2.5명만 넘어도 이른바 ‘마비 상태’에 이르러 사고 위험이 커진다. 작은 충격에도 수많은 사람이 한쪽으로 쉽게 밀려 크게 다칠 수 있어서다.
이태원 참사 3주기를 앞두고 동아일보는 김세훈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권순조 국립금오공대 기계공학부 부교수와 재난 대피 설계 전문 기업을 운영하는 김현철 대표에게 자문을 해 올 1∼9월 서울 내 역별 승하차 인원수 상위 5곳의 인파 밀집도를 분석했다. 5곳은 잠실역, 강남역, 홍대입구역, 서울역, 구로디지털단지역이다.
그 결과 시민들이 위험 수위 직전 수준의 ‘압사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과밀한 역은 2호선 강남역이었다. 승강장 계단의 밀집도는 1㎡당 최대 4.8명, 승강장은 최대 4명이었다. 지하철역 5곳의 계단 평균 밀집도는 1㎡당 3명으로 조사됐다. 현행 ‘도시철도 정거장 및 환승·편의시설 설계지침’은 2.5명만 넘어도 떠밀리는 상태로 본다. 서울 주요 승강장 계단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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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3년, 과밀 일상 여전… 좁은 계단서 인파에 떠밀려 휘청
“질서유지 안전요원 더 배치하고, 보행 동선 만드는 안전바 설치를”
25일 오후 6시 반경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퇴근길 승객 수천 명이 승강장에 다닥다닥 붙어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대역으로 가는 열차가 도착한 뒤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쏟아져 내리자 승객들이 파도에 휩쓸리듯 순식간에 우르르 한 방향으로 쏠렸다. 직장인 김주영 씨(30)는 “한 번은 인파에 떠밀려 넘어질 뻔했다”며 “매일 ‘압사 위험’ 속에 사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질서유지 안전요원 더 배치하고, 보행 동선 만드는 안전바 설치를”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흘렀지만 출퇴근하는 직장인 등 시민들은 여전히 좁은 공간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과밀(過密) 일상’ 속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지하철역 승강장과 계단은 압사 사고 위험 수위에 근접할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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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승강장 계단에서의 인파 사고 위험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강남역 승강장 계단은 1㎡당 최대 4.8명이 몰렸다.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은 최대 4.3명으로 집계됐다. 이어 홍대입구역 2.2명, 잠실역 2명, 서울역 1.9명 순이었다. 현행 ‘도시철도 정거장 및 환승·편의시설 설계지침’에 따르면 계단 면적에 1㎡당 2.5명이 넘게 모여 있으면 ‘교통 마비 상태’ ‘떠밀리는 상태’로 분류된다. 계단에서 한꺼번에 뒤로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위태로운 상황은 출퇴근길 곳곳에서 포착됐다. 24일 오전 8시경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에 도착한 열차에선 승객 130여 명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들이 한꺼번에 계단으로 내려가다 보니 인파에 밀려 계단을 헛디딘 사람도 있었다. 직장인 이승준 씨(55)는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큰일 날 것 같아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기도 한다”며 “인파 사고가 염려되는데 대응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6시경 퇴근길 1호선 서울역에서도 좁은 통로와 계단을 따라 이동하다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 “안전 요원 늘리고 통행 방향 관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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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디지털단지역 등은 인파가 몰리는 시간대에 안전 요원조차 없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인파 사고가 우려되면 사전 경보를 발령하고, 지하철역 밀집시간대 관리 요원 배치 등을 통해 사고 예방을 하도록 지방자치단체를 독려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회사원 강혜지 씨(28)는 “사람이 몰릴 때면 이태원 참사가 떠올라 열차를 타지 않거나 탔다가도 무서워져서 내린다”며 구석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질서 유지를 돕는 안전 요원을 추가 배치하는 등 물리적 대책과 함께 시민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도경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승객들의 보행 흐름이 일정하게 흘러갈 수 있는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며 “질서 유지 인력을 배치할 뿐만 아니라 계단 등에서 동선을 만들 수 있는 안전바 등이 설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은 “인파가 갑자기 몰렸을 때 급하게 행동하지 않는 등 시민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