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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과 먹빛, 경주에 스며들다

입력 | 2025-10-22 03:00:00

경주 미술관, APEC 맞아 특별전
우양, 백남준의 ‘불빛’
‘나의 파우스트’ ‘…1929 포드’ 등 연결 혁신 담은 작품 12점 선봬
솔거, 전통문화 ‘먹빛’
현대작가들 ‘신라유산’ 재해석… 박대성의 대형 수묵화 등 눈길




백남준의 ‘전자초고속도로-1929포드’. 우양미술관 제공

1929년식 포드 자동차 위에 나무로 만든 전통 가마가 놓였다. 가마의 창밖으로 붓으로 쓴 글씨 ‘전자초고속도로’가 걸려 있는데, 단어는 최첨단의 분위기지만 모양새는 오래된 듯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발명품인 자동차와 과거의 유물인 가마, 그리고 전자초고속도로. 모두 사람이 그 중심에 있는 건 마찬가지라고 역설하는 듯한 이 작품은 백남준의 ‘전자초고속도로-1929 포드’다. 7월부터 경북 경주시 우양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 Humanity in the Circuits’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최근 경주는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맞아 여러 미술관이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서로 다른 색채를 지닌 우양미술관과 경주솔거미술관의 전시를 살펴봤다.

● 백남준의 ‘기술 속 인류애’

다음 달 30일까지 열리는 우양미술관 전시는 ‘기술이 만든 세상 속에서, 예술은 어떻게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란 질문을 던진다. 2025 APEC의 주제인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내일―연결 혁신 번영’과 이어지는 셈. 이에 따라 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의 작품 12점과 백남준의 판화 제작 실무자였던 마크 패츠폴의 판화 컬렉션 등을 함께 전시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1980, 90년대 백남준의 예술적 전환기에 초점을 맞췄다. 자동차, 텔레비전, 라디오 등 여러 기술 매체를 재료로 인간을 탐구한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백남준이 기술의 회로 속에 새겨 넣은 인류애의 흔적을 다시 읽어본다는 뜻이다.

백남준의 ‘나의 파우스트’ 연작 가운데 ‘영혼성’(왼쪽)과 ‘경제학’. 우양미술관 제공

선보이는 작품들은 대부분 수십 년 만에 관객을 만나는 것들이다. ‘나의 파우스트’ 연작 2점은 백남준이 괴테의 책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인간 문명의 기본 요소인 지성과 욕망, 끊임없는 탐구를 표현했다. 두 작품 모두 신전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데 ‘경제학’은 세계 각국의 지폐와 동전을 활용해 장식했다. ‘영혼성’은 민간 신앙 등 다양한 종교적 상징을 사용한게 특징이다.

‘고대기마인상’은 1991년 우양미술관 개관을 기념해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토기’를 재해석해 제작했다. 텔레비전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 형태로 아날로그와 디지털, 지역과 세계의 연결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금강산 여행기념’에서는 1935년 백남준이 가족과 함께 금강산을 여행했던 사진도 작품 왼편에서 볼 수 있다.

이지우 미술관 학예연구사는 “APEC 의제인 ‘연결 혁신 번영’은 백남준이 평생 추구했던 것”이라며 “그는 세계의 통합이 정치나 국가가 아닌 예술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

경주솔거미술관은 22일 ‘신라한향: 신라에서 펼쳐지는 한국의 향기’전을 개막하고 신라 문화를 현대 작가들이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석굴암과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유산를 소재로 제작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김민 작가의 ‘적연명’. 경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박대성 작가는 반구대 암각화, 고구려 벽화인 ‘수렵도’, 하회탈 등 대표적인 전통문화 도상을 결합한 대형 수묵화 ‘코리아판타지’를 공개한다. 송천 스님은 관세음보살과 성모 마리아를 불화 기법으로 그린 ‘관음과 마리아―진리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를, 문화재 복원 전문가이기도 한 김민 작가는 석굴암 본존불 등을 전통 회화 기법으로 만든 작품 ‘적연명(寂然明)’을 선보인다. 박선민 작가는 버려진 유리병을 모아 만든 설치 작품 ‘시간의 연결성’을 출품했다. 내년 4월 26일까지.



경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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