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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교통사고 환자 찾은 곳 80%가 한방병원

입력 | 2025-10-15 03:00:00

비급여 진료 많아 합의금 협상 유리… 5년간 5차례 이상 사고 7만명
가장 많이 들른 의료기관 꼽혀… “서류조작 해주겠다” 브로커까지
“보험재정 누수 이어져 악용 막아야”




“(교통사고 과실 비율) 100 대 0 나올 것 같은데 한방병원 갈지 고민 중.”

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교통사고 한방병원’ 등을 검색하면 “한방병원에 입원해야 합의금을 더 받을 수 있다” “(가해자가) 오히려 화내서 어이없다. 한방병원에 입원해야겠다” 같은 글이 줄줄이 나온다. 최근 5년간 교통사고를 여러 차례 당한 환자들이 가장 많이 찾은 병원 10곳 가운데 8곳이 한방병원으로 드러났다. 한방병원을 치료가 아닌 ‘합의금 증액’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교통사고 병원’ 10곳 중 8곳이 한방

교통사고 경상자들이 합의금을 이유로 한방병원에서 과장·허위 진료를 받는 사례가 늘면서 자동차보험 재정 누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교통사고 환자에게 한방병원이 ‘당연한 선택지’로 굳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 수는 ‘사고접수번호, 보험사코드, 주민번호’를 기준으로 하나의 환자로 간주하여 산출. 한 사람이 2차례 사고를 당하면 2명으로 집계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5차례 이상 교통사고를 당해 진료받은 환자는 7만7401명이었다. 눈여겨볼 점은 이처럼 여러 차례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들이 가장 많이 들른 의료기관 10곳 중 8곳이 한방병원이었다는 점이다. 나머지 2곳은 인천의 한 영상의학과 의원과 한의원이었다. 서울의 한 한방병원엔 5년간 4820명의 환자가 찾아 1위를 차지했고, 대전의 다른 한방병원에는 2602명이 방문했다.

교통사고 환자가 한방병원부터 찾는 것이 관행처럼 된 건 염좌나 타박상 등 경상일 땐 X-레이로도 진단이 어려워 환자의 진술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술과 약물치료 등이 중심인 일반 병원과 달리 한방병원은 침술처럼 후유증을 완화하거나 통증을 관리하기 위한 진료법이 다양해 교통사고 경상자가 자주 찾는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비싼 첩약 등 비급여 진료 항목이 일반 병원보다 많아, 가해자와의 합의 과정에서 유리하다는 인식도 확산해 있다.

● “외출·외박 쉽다” 브로커까지 활개

문제는 일부 한방병원과 환자가 이를 악용해 불필요한 첩약이나 치료를 반복하며 보험 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에서는 한 40대 한방병원장이 교통사고 환자에게 소화제를 처방하면서 통증 완화용으로 꾸민 뒤 2598회에 걸쳐 보험금 3억8453만 원을 빼돌려, 올해 6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한방병원은 보험사기단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올 7월엔 자해공갈을 벌인 뒤 한방병원에서 치료받는 수법으로 보험금 약 5억9000만 원을 챙긴 일당의 주범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최근에는 “서류 조작이 쉽고 입원 중 외출·외박이 가능하다”며 환자에게 접근하는 보험사기 브로커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이를 적발하기는 쉽지 않다. 금융감독원 보험사기대응단 관계자는 “교통사고 허위 입원 등 보험사기는 대부분 제보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보완책은 공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 6월 교통사고 경상자가 8주 이상 장기 치료 받으려면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자동차손배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으나 ‘보험사에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지적에 따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병원과 환자 모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병원은 진료비로, 환자는 합의금으로 이익을 얻는 구조가 도덕적 해이를 고착화시킨다”며 “보험 재정 누수를 막으려면 한방 진료의 투명성과 사후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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