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앞둔 1910년 3월 中뤼순형무소서 쓴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吊日本) 安의사, 자신을 동양지사로 쓴건 처음 日 노골적 비판…기개-단호 “가장 안중근다운 글” 소장했던 일본인 “처음 봤을 때 덜컥 겁이 났다”
안중근 의사(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1910년 3월 안 의사가 중국 뤼순형무소에서 일본인을 향해 ‘긴 탄식 한마디 말로 일본을 먼저 조상(弔喪)한다’는 뜻으로 쓴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 머물다가 약 115년 만에 한국의 품에 안겼다. 안 의사의 유묵은 국내외에 약 200점 남아있는데, 안 의사가 자신을 ‘동양지사(東洋志士)’라고 쓴 작품은 처음으로 발견됐다.
환수를 총괄한 김광만 윤봉길의사 기념센터장에 따르면 기존 소유자는 일본인으로, 1968년경 선대로부터 유묵을 물려받은 뒤 자택에 이를 보관해 왔다. 유묵을 처음 입수한 소유자의 할아버지는 일제 대만총독부, 중국 만주 관동도독부 등에서 고위 관리로 일했다. 관동도독부는 안 의사의 재판을 관할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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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안중근다운 글”
장탄일성
이 유묵은 폭 41.5cm, 길이 135.5cm 명주 천에 쓰였다. 명주 천은 당시 화선지보다 귀했던 소재로, 휘호를 요청한 일본인의 위치를 가늠케 한다. 하늘로 올려붙인 선(先) 자의 삐침 획은 죽음 앞에서도 독립의 뜻을 굽히지 않고 일제에 맞선 기개와 단호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안 의사 연구의 권위자인 김영호 경북대 명예교수는 “동양 평화를 해치고 세계 전쟁을 자초하는 일본은 결국 패할 것이며, 끝내 망할 일본을 위해 미리 조상한다는 의미가 담겼다”며 “옥중에서도 ‘동양 평화 만세’를 부른 안 의사의 동양평화사상이 오롯이 반영된, ‘가장 안중근다운’ 글”이라고 분석했다.
안중근 면회 장면
‘장탄일성 선조일본’도 그중 하나다. 2000년 이 유묵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한 김 센터장은 “일본인에게 달갑지 않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잘 보관된 덕에 유묵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며 “소유자가 그간 마음 졸이며 간직해 온 유묵을 선물로써 보내는 마음이 잘 느껴졌다”고 했다.
● ‘동양지사’의 기개 가득한 걸작
안중근의 다른 유묵 ‘일통청화공’(국가지정유산 보물)
김 교수는 “안 의사가 일본인에게 주로 유교적, 종교적 교훈이나 심중을 글로 써서 준 것과 달리, 이번 유묵에는 거센 비판이 담겨 희소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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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이 발간한 ‘안중근 문집’에 따르면 경술이라는 간지(干支) 연호 대신 이처럼 서기 연호를 쓰고 자신을 ‘동양지사’라고 칭한 유묵은 지금까지 확인된 적이 없다. 보물 ‘위국헌신 군인본분’, ‘국가안위 노심초사’ 등의 하관에는 ‘경술년 3월 뤼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삼가 절함(謹拜)’이라고 적혀있다.
지문 감정서. 장탄일성 선조일본 속 손바닥 도장
천여불수반수기앙이 속 손바닥 도장
유묵은 현재 경기도청에서 보관 중이다. 추후 경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 건립되는 ‘안중근 평화센터’에서 전시 등 용도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