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라도 아버지의 한국어 이름을 되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수의 셋째 딸 남건옥 씨(80)는 12일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남 씨는 “아버지는 눈감으시는 날까지 한국 마라톤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라며 “뒤늦게라도 아버지가 한국인으로서 한국 이름과 함께 세계에 소개되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일제강점기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 참여했던 한국인 선수 9명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홈페이지에서 일본 이름과 함께 한국 이름도 표기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일본 국적에 일본어 이름으로만 홈페이지에 기재돼 왔으나 국회와 대한체육회의 요구로 한국 국적과 한국어 이름이 병기된 것이다.
광고 로드중
IOC 홈페이지에 손기정 선수의 한국어 이름(밑줄)이 병기돼 있다. IOC 홈페이지 캡처
故 손기정 선수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뛰고 있다. 채널A 제공
IOC 측은 대한체육회에 “한국 국회의원 명의의 서한 전달 등 국회의 노력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으로밖에 참여할 수 없었던 역사적 배경과 이름 등을 병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고 한다.
故 남승룡 선수. 대한체육회 제공
광고 로드중
두 선수 외에 7명의 올림픽 영웅들도 한국인 이름과 국적이 병기됐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농구에 일본 국적으로 참여했다가 광복 이후 대한농구협회 등을 창립한 이성구 선수와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장이진 선수 등이다. 대한체육회는 IOC와 협력해 나머지 2명에 대해서도 한국어 이름 병기를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의 가족들은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손 선수의 외손자인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다른 선수들도 한국어 이름이 기입돼 다행”이라며 “앞으론 한국 이름과 국적이 먼저 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어 이름 병기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체육회의 감사패를 받은 배 의원은 “늦게나마 조국 잃은 청년의 설움을 위로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11명 선수의 명예를 되찾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고 로드중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