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천 곳곳 몸살…“살충제 쓰라” 요구 빗발 익충인데 화학적 대응은 되레 생태계 해칠 우려 “물 살포하고 끈끈이 사용…가정은 방충망 점검을”
30일 오후 인천 계양구 계양산 정상에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 무리가 대량 출몰한 가운데 방역에 나선 계양구청 공원녹지과 산림보호팀 관계자가 쓴 보호 마스크에 벌레가 달라붙어 있다. 인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얼굴에 계속 달라붙어 눈 뜨고 산책하기 힘들 지경이에요.”
30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북악산 등산로에서 산책하던 황중식 씨(63)는 공중에 날아다니는 붉은등우단털파리(일명 러브버그)를 손으로 연신 쫓으며 이렇게 말했다. 약 600m에 이르는 산책로 전역에는 수백 마리의 러브버그가 무리를 지어 날고 있었다.
광고 로드중
계양산에 설치된 러브버그 롤트랩 (인천 계양구 제공)
러브버그 민원은 최근 전국적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인천 계양산에서는 러브버그 사체가 등산로에 10㎝가량 쌓인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계양구에 따르면 6월 23일부터 30일까지 일주일 사이에만 440건의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 인근 서구에서도 올해 들어 관련 민원이 240건 이상 접수됐다.
서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러브버그 관련 민원은 2022년 4418건에서 2023년 5600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9296건에 달했다. 1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서울 곳곳에서 러브버그를 쫓기 위해 시민들이 손을 휘저으며 걷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북악산에서 만난 한 시민은 “상쾌한 공기를 마시러 왔는데 벌레가 계속 입과 코에 들어올 정도도”라며 불쾌한 얼굴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28일 인천 계양산에 나타난 러브버그 모습. 인스타그램 kimlark34 캡처
광고 로드중
● “친환경 방제…산책 시 밝은 색 옷 피해야”
민원이 잇따르자 서울시의회는 지난 3월 러브버그 등 대거 발생하는 곤충에 대해 시장이 체계적이고 친환경적인 방제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생태 특성과 피해 정도를 분석해 정기적인 방제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민간 전문가와 지역 주민 의견을 반영해 방제 효과를 높이는 것이 조례의 주요골자다. 필요시 긴급 방제도 가능하도록 했다.
서울 도심에 출몰한 일명 ‘러브버그’ 붉은등우단털파리의 모습. 뉴스1
인천 계양구 관계자는 “러브버그는 병해충 사업 대상이 아니어서 별도 방제 작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 감염병예방과 관계자도 “자치구 차원에서 친환경 살수 방제를 진행하고 있으며, 일반 민원에는 물 분무 등을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러브버그 대발생이 기후 변화로 인한 불가피한 일이라며 친환경 방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태풍과 호우로 인한 기류 변화로 중국 지역의 러브버그가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며 “이들이 해충이 아님에도 화학적 방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등 생태계 내 유익한 기능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서울시가 시행 중인 끈끈이 트랩이나 물살포 방식처럼, 시민 불편은 줄이되 생태계 균형을 해치지 않는 방제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